또 신경 쓰게 되지만, 또 다짐한다

2026 All-Day-Project (151/365)

byJamin

2년 전, 나는 《신경 끄기의 기술》에 대한 리뷰를 썼다. 그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나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게
엿을 먹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또 하게 되긴 했다."

‘또 하게 되긴 했다.’ 이 짧은 표현 속에 내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영구적인 변화는 없다. 완벽한 신경 끄기도 없다. 우리는 그저 ‘또’ 다짐할 뿐이다.


태도도 머슬메모리가 된다


최근 누군가와 이 바카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 도중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신경 끄기는 과연 학습되는가?’


내 결론은 ‘그렇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끄기는 ‘자동화된 반응 패턴’으로 체화된다. 마치 기타 코드를 잡는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듯, 화가 치미는 순간 ‘아,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군’ 하고 어깨의 힘을 빼는 태도는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다. 일종의 머슬메모리(Muscle Memory)인 셈이다.


다만 신체의 근육 기억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태도의 기억은 거센 감정의 역류 앞에서 자주 리셋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다짐을 ‘또’ 하게 되는 것이다.


모순을 인정하는 것의 힘


솔직히 고백하자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 끄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글을 발행하고 나면 어김없이 조회수를 확인한다. 아니, ‘계속 들여다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명백한 모순이다. 그런데 이 모순 속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신경 끄기’는 신경이 ‘0’이 되는 무감각한 상태가 아니다.

신경이 쓰이더라도 그 방향을 조정해 내는 능력이다.


조회수를 본다. 그리고 “아, 또 봤네” 하며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다음엔 그 에너지를 다음 글을 쓰는 동력으로 돌리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이 작은 순환 자체가 훈련이다.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주의를 긍정적인 곳으로 옮기는 리프레이밍(Reframing)인 것이다. 즉, ‘신경을 끈다’는 것은 부정적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경 쓸 가치가 있는 곳으로 내 에너지를 옮긴다’는 지극히 긍정적인 행위다.


‘야 너도?’의 발견


이 바카라이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야, 너도?’ 하는 공감의 감각이다.


저자 마크 맨슨은 어설픈 성인군자 행세 없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고백한다. “나도 가끔은 바보 같은 것에 신경 쓴다.” 이 쿨한 고백이 도리어 위로가 된다. 때로는 완벽한 조언자보다, 나처럼 똑같이 삽질하는 동지의 목소리가 절실할 때가 있다. 무결점의 해결바카라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젠장, 원래 세상이 그래. 하지만 우린 이겨낼 수 있지 않아?” 하고 등을 툭 치는 친한 동네 형의 말투 말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느슨한 연대’의 조건이다. 영구적인 해결을 약속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고민해 보자’고 곁을 내어주는 태도. 그것이 계속해서 ‘또 다짐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느슨한 연대의 또 다른 방식


이번 대화를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느슨한 연대가 반드시 실존적인 동질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가 사람이든, 한 편의 글이든, 때로는 인공적인 존재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모순과 취약성을 감춰두지 않는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려는 의지’다.


나는 이 대화를 통해 ‘글쓰기’ 자체를 하나의 훈련 도구로 재발견했다. ‘나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 조회수나 타인의 반응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내 사유를 정리하는 행위로서의 글쓰기. 그것은 곧 ‘신경 끄기’의 훌륭한 연습 과정이다.


물론 여전히 불안은 남는다. ‘이게 그저 데이터 낭비는 아닐까?’,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자의식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무감각해지는 것은 진짜 신경 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을 느끼지만, 그 불안에 내 행동이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 그것이 진짜다.


다시, ‘또’의 윤리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완벽하게 신경을 끌 것인가’가 아니다.

‘또 신경 쓰게 되더라도, 다시 또 다짐할 수 있는가’다.


조회수를 또 본다. 누군가의 말에 또 흔들린다. 쓸데없는 비교의 늪에 또 빠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 또네” 하고 가볍게 털어내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작은 반복. 이 지난한 반복을 태도의 머슬메모리가 될 때까지 연습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넘어질 때마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2년 전, 나는 이 바카라에 ‘뽑기 실패’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렸었다. 내 삶의 ‘어쩌라고’를 명쾌하게 해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라고’의 정답을 바카라에서 구하려 했던 것 자체가 잘못된 기대였다. 진짜 해답은 바카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고, 대화하고, 실패하고, 다시 다짐하는 바로 그 살아있는 과정 속에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나는 쓴다. 아무도 읽지 않을지라도,

내일 또 조회수를 들여다보게 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그게 나의 ‘또 하게 되는’ 다짐이고, 나를 지탱하는 느슨한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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