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50/365)
2014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 ‘추천 도서’를 남길 기회가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토가시 요시히로의 만화 『헌터×헌터』를 꼽았다. 왜 이 만화를 추천하는지 제법 길게 적어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계정을 해킹당하며 그 글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문장의 형태는 다 휘발되었음에도, 내가 이 작품을 학교에 남기고 싶었던 이유만큼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근 우연히 이 만화를 다룬 영상을 보며, 잃어버린 그 글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보고 싶어졌다.
본론 1 – 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적어 냈습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군가가 미리 정해둔 ‘정답’을 추적하는 일에 참 익숙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 4년쯤 지나서야(아마 3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서술형 시험의 요령 하나를 뒤늦게 깨달았다. 답안지에 내 생각을 치열하게 적어내는 것보다, 교수가 수업 시간에 강조했던 ‘키워드’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복원해 내느냐가 좋은 학점의 지름길이라는 씁쓸한 사실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정일영 강사의 영상 속 에피소드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시험을 치렀을 때, 담당 교수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적어서 냈습니까?”
정해진 답안지를 훌륭하게 복사해 내는 것이 미덕이었던 세계를 벗어나, 비로소 ‘너만의 답이 무엇이냐’고 묻는 낯선 세상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 어쩌면 우리가 학교 문을 나서며 맞닥뜨려야 했던 진짜 현실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본론 2 – 트롤리 문제 앞에서 땀을 흘리는 소년
우리가 흔히 아는 ‘트롤리 딜레마’가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달리고 있고, 선로에는 다섯 명이 묶여 있다. 내가 방향을 틀면 한 명만 있는 선로로 기차를 보낼 수 있다. 당신은 레버를 당길 것인가? 윤리학 수업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다수의 이익인지, 도덕적 원칙인지 토론하며 꽤 그럴듯한 ‘정답’ 혹은 ‘모범 답안’들을 찾아낸다.
내게 『헌터×헌터』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 오래된 딜레마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대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화 초반부, 주인공 곤 일행에게 수험관은 트롤리 문제의 잔인한 변형판 같은 퀴즈를 던진다.
“어머니와 연인, 두 사람이 동시에 악당에게 납치되었다.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는가?”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답을 찾으려 애썼지만, 퀴즈의 통과 조건은 ‘침묵’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정답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는 논리적 해답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퀴즈가 끝난 후 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정답이 침묵임을 깨닫고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곤은 혼자 남아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왜 아직도 고민하느냐는 질문에 소년은 답한다. “언젠가 정말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강의실에서는 그저 ‘레버를 당긴다, 만다’로 가볍게 논해지던 딜레마가, 곤에게는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 내 삶에 닥쳐올 수 있는 ‘현실의 무게’로 다가온 것이다. 교수의 키워드를 조립해 내던 나의 얄팍한 답안지, 혹은 윤리학 바카라 속의 우아한 토론과는 정반대에 있는 치열한 땀방울이었다.
본론 3 – 가벼운 위로 대신, 두려움을 곁에 두는 일
슬롯에 갓 발을 들였던 이십 대의 나는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던 팍팍한 교실을 드디어 벗어났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의 삶이나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나는 그 말의 이면에 숨은 서늘함을 자주 느낀다.
요즘 우리는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생각하라’거나 ‘틀려도 괜찮다’는 따뜻한 말로 서로를 위로하곤 한다. 참 고마운 말이지만, 가끔은 그 말이 품은 다정함 때문에 우리가 마주한 선택의 무게마저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지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정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무렇게나 선택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답이 없기에, 내 작은 선택 하나가 만들어낼 파장을 온전히 내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나는 그 막연함이 주는 두려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움은 내 선택이 타인과 세상에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일종의 조심스럽고 다정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결론 – 철학은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도서관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만화바카라 한 권이 아니라, 딜레마 앞에서 곤이 보여주었던 그 ‘머뭇거림’과 ‘식은땀’이었을 것이다.
두꺼운 철학서나 교양서가 아니어도 좋다. 소년 만화의 한 장면에서도 우리는 삶을 관통하는 묵직한 태도를 배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앞에 놓일 정답 없는 문제들 앞에서 가벼운 위로로 도망치기보다는, 곤이 그랬듯 땀을 흘리며 오래도록 망설여 보려 한다. 그 두려움의 시간 끝에 내리는 선택만이, 비로소 나의 진짜 정답이 되어줄 테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도 각자의 곤 프릭스가 하나쯤 살아 숨쉬고 있기를 바란다. 그 소년이 당신의 곁에서, 당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견뎌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만히 응원해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