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축하하는 문화는
어떻게 점화되는가

2026 All-Day-Project (143/365)

byJamin

뚜쉐에 관련한 글에 이어서 다시 생각하기



회의실에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누군가 내 논리의 허점을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한다. 어떻게든 의견을 변호하려 하거나, 말을 돌리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혹시 내가 틀린 건 아닐까?”


이 가능성을 직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우리는 왜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는 데 이토록 서투를까? 성장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역설적이게도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원래부터 우리가 이랬던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라. 우리는 무릎이 까지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섰고, 넘어지는 것을 실패가 아닌 ‘균형을 잡기 위한 자연스러운 데이터 수집 과정’으로 여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Fail’이라는 단어에서 ‘다시 시도하라(Try Again)’는 기회 대신, ‘낙인’과 ‘자바카라감’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1. 틀릴 수 있는 지적 용기, ‘뚜쉐(Touché)’


이 경직된 대화의 공기를 깨뜨릴 열쇠가 펜싱 용어인 ‘뚜쉐(Touché)’에 있다. 상대의 칼끝이 내 몸의 유효한 면에 닿았을 때, 스스로 유효타를 인정하며 외치는 명예로운 선언이다.


이는 단순한 패배 시인이 아니다. 상대의 탁월함을 존중하는 정직함이자, 그의 공격에서 기꺼이 배우겠다는 지적인 용기의 표현이다. 오류의 인문학적 가치를 탐구한 저술가 캐스린 슐츠(Kathryn Schulz)는 그녀의 기념비적인 저서 《오류의 인문학(Being Wrong)》을 통해 다음과 같은 깊은 통찰을 전했다.


“우리가 맞기를 갈망하는 마음은, 결국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Our love of being right is best understood as our fear of being wrong.


그녀의 말처럼, 정답에만 집착하는 문화는 구성원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의 비즈니스 미팅에서 ‘뚜쉐’를 외치기란 쉽지 않다. 조직 내 엄연히 존재하는 권력 관계, 그리고 과거 실패했을 때 경험했던 비난이나 무시의 감정적 기억이 우리 몸을 경직시키기 때문이다.


취약성(Vulnerability) 연구의 대가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를 완벽주의와 수치심의 문제로 진단한다.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라는 수치심과 즉각 연결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조직 내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 이것이 대화 속에서 ‘뚜쉐’를 가로막는 가장 거대한 벽이다.


2. 점화자로서의 리더: 불완전함을 고백하기


이 견고한 벽을 허물기 위해, 문화가 자연스러운 엔진처럼 구동되려면 초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점화자가 필요하다. 그 적임자가 바로 리더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는 심리적 안전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의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실수를 고백하더라도
비난받거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녀는 특히 리더가 자신의 ‘불완전함(Fallibility)’을 먼저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판단 착오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난주에 내린 결정 중 이 부분이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시장의 흐름을 오판했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이 한마디는 실패 인정을 위험한 도박이 아닌, 일상적이고 안전한 행위로 리프레이밍(Reframing)한다. 브레네 브라운 역시 “취약성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결과를 통제할 수 없을 때조차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Vulnerability is not about winning or losing. It’s having the courage to show up even when you can’t control the outcome)”이라고 말했다.


리더가 기꺼이 취약해지며 ‘뚜쉐’를 먼저 외칠 때, 팀원들은 비로소 안전하게 도전하고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든든한 대지를 얻는다.


3. 의미를 부여한 의식(Ritual)의 설계


행동의 반복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사내 표어나 규칙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몸소 참여하고 재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의미가 부여된 의식(Ritual)’이 필요하다.


실제로 핀란드의 글로벌 게임 기업 슈퍼셀(Supercell)은 프로젝트 개발을 취소(실패)할 때마다 전 직원이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는 독특한 의식을 치른다. 슈퍼셀의 창업자이자 CEO인 일카 파나넨(Ilkka Paananen)은 이 독특한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패 자체를 축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도하는 데 필요했던 그 거대한 용기를 격려하고, 그 뒤에 따르는 배움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실패가 위험하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안전한 길만 택합니다.
하지만 실패해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심지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진짜 가치 있는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뚜쉐’를 체득하기 위해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세 가지 리추얼을 제안한다.


① ‘오늘의 수확’ 공유

회의 종료 직전 마지막 1분 동안, 각자 오늘 발견한 자신의 오류나 동료 덕분에 배운 점을 짧게 공유한다.

예시: “제가 A 지표만 보고 마케팅 예산을 과도하게 잡았는데, OO 님의 피드백 덕분에 전체 퍼널(Funnel)의 누수를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동료들은 이에 대해 불필요한 피드백을 더하지 않고, 오직 “감사합니다” 혹은 “배워갑니다”라는 격려로만 화답한다. 이를 통해 실패는 손실이 아닌 ‘수확’으로 재정의된다.


② ‘뚜쉐 토큰’ 누적

회의실에 조그마한 투명 항아리와 예쁜 조약돌(토큰)을 준비해 둔다. 회의 중 스스로의 생각 오류를 기쁘게 인정하거나 동료의 날카로운 논리를 흔쾌히 수용했을 때, 당사자 혹은 동료가 토큰을 하나씩 항아리에 넣는다.

핵심: 월말이나 분기 말에 모인 토큰들을 세어 보며, 팀이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축하한다. 실패가 정량적인 ‘지적 자산’으로 축적되는 효과를 낳는다.


③ 실패 축하 박수 (1초 리추얼)

누군가 회의에서 “뚜쉐, 제 생각이 틀렸고 그 말씀이 전적으로 맞네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는 팀원 전체가 리드미컬하게 가볍게 두 번 손뼉을 친다(짝짝!).

핵심: 단 1초의 신체적 반응이지만, 지적 정직함을 드러낸 당사자에게 즉각적인 긍정 피드백을 전달하여 뇌에 심리적 안전감을 물리적으로 각인시킨다.


마무리: 방랑하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품격


우리가 틀림을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실패 그 자체보다, 그 뒤에 따라올 소외감과 ‘무가치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는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상호 인정의 결과물이다.


실패를 공유하고 축하하는 작은 리추얼을 반복할 때, 조직은 구성원에게 가장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당신의 생각은 일시적으로 틀렸을지라도, 당신의 존재 가치는 여전히 변함없이 귀하다”는 신호 말이다.


다시 캐스린 슐츠의 통찰로 돌아가 보자.


오류란 방랑하는 것이며, 방랑이란 세상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맞닿은 정답은 기분 좋지만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틀린다는 것은 어렵고 겸손해져야 하며 때론 위험한 일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여정이자 이야기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하지만 리더가 먼저 플러그에 스파크를 일으킨다면, 그 불씨는 반복과 의식을 통해 조직의 지속 가능한 혁신을 구동하는 자연스러운 엔진이 될 것이다.


오늘 회의에서는 동료의 날카로운 지적에 방어막을 치는 대신,

미소와 함께 가볍게 손을 들어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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