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2026 All-Day-Project (110/365)

byJamin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1편: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2편: 사람을 키우는 팀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3편: 매일 이기려 하면 지는 이유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4편: 숫자로 보되 숫자에 갇히지 않기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5편: 승리에 기여한 일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 — 6편: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만드는 사람에게 "만들자"는 쉬운 말입니다. 새로운 기능, 새로운 시도, 새로운 가능성.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기획이 시작되고 개발이 돌아가는 그 과정에는 에너지가 있어요. 무언가 생겨나는 걸 보는 건 본능적으로 즐겁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그만두자"는 어렵습니다. 만드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이 결정이, 어쩌면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제품 백로그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대부분의 팀에는 "언젠가 하기로 한 것들"의 목록이 있어요. 처음에는 열 개쯤이던 것이 서른 개, 쉰 개로 늘어납니다.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 고객이 요청한 기능, 경쟁사가 출시한 것, 경영진이 언급한 방향. 하나하나는 다 그럴듯해요.


그런데 목록이 길어질수록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우선순위인 팀은, 사실 아무것도 우선순위가 아닌 팀입니다.


여기에는 심리적 함정이 숨어 있어요. 매몰비용이라 불리는 것인데, 일상의 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여기에 이미 이만큼 투자했는데." 세 달 동안 개발한 기능이 있어요. 데이터를 보니 사용자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접어야 해요.


그런데 세 달의 시간, 세 명의 인력, 수많은 회의와 야근이 떠오릅니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여기서 접으면 그 시간이 다 낭비잖아." 이미 쓴 비용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놓아주질 않아요.


이건 개인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팀 전체가 빠져들어요. 이 기능을 기획한 PM, 디자인한 디자이너, 개발한 엔지니어—모두가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것이니까요. "접자"는 말이 곧 "우리가 한 일이 헛된 거였다"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 말을 먼저 꺼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다들 알면서도 질질 끌려갑니다. 데이터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팀은 관성처럼 계속 달려요.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꽤 오래 공들인 기능이 있었는데, 출시 후 반응이 기대에 한참 못 미쳤어요. 팀원들의 눈빛에서 "이거 아닌 것 같은데…"가 읽혔지만,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동안 "다음 업데이트에서 나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어요.


결국 접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두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 두 달 동안 팀은 살릴 수 없는 것을 살리느라 새로운 기회를 놓치고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가장 비쌌던 건 기능에 투자한 시간이 아니라, 접지 못하고 끈 시간이었습니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이걸 "트레이드 데드라인"이라 불러요. 시즌 중간에 "올해는 우승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주력 선수를 다른 팀에 보내고 미래를 위한 자산을 받아오는 결정을 합니다. 에이스 투수를,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를 보내는 거예요. 당장은 아프지만, 프랜차이즈의 3년 후를 위한 선택입니다. 좋은 단장은 이 결정을 미루지 않아요. 미루면 미룰수록 받아올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떨어지거든요.


제품에서의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기능의 일몰(sunset)"입니다. 더 이상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기능을 내리는 것. 이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사용자가 소수라도 있으면 "이 사람들은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고, 없앤다는 소식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까 두렵고,


무엇보다 "빼는 것"보다 "더하는 것"이 성과로 인정받는 문화에서는 일몰을 추진할 유인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능을 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야 해요. 유지보수 비용이 쌓입니다. 아무도 쓰지 않는 기능의 버그를 고치고, 새로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맞추고, 테스트 케이스를 관리하는 데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계속 들어갑니다. 3편에서 이야기한 기술부채가 여기서도 쌓이는 거예요. 설거지를 미루는 것처럼, 안 쓰는 기능을 안고 가는 것도 조용히 팀의 속도를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는 소극적인 결정이 아니에요. 가장 적극적인 결정 중 하나입니다. 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이 결정을 잘 내리기 위해 제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 "지금 시작한다면 이걸 다시 만들겠는가." 이미 투자한 것은 잊고, 오늘 백지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이 기능을 만들겠느냐고 물어봅니다. 답이 "아니오"라면, 이미 투자한 것 때문에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둘째, "이걸 유지하는 비용으로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에는 기회비용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유지하느라 쓰는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판단이 좀 더 선명해져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해 그만두는 거니까요.


셋째, "이 결정을 6개월 뒤의 내가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은 아프지만 6개월 뒤에 "그때 잘 접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면, 지금의 감정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어요. 반대로 6개월 뒤에 후회할 것 같다면, 좀 더 신중해야 하고요.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게 있어요. 포기의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결정을 팀과 어떻게 나누느냐입니다. "이건 실패했으니 접는다"와 "이걸 통해 우리가 이런 걸 배웠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다른 방향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같은 결정이지만 팀이 느끼는 건 완전히 달라요. 전자는 허탈함을 남기고, 후자는 의미를 남깁니다.


포기를 학습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이건 말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접는 과정에서 "왜 안 됐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하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그 시간이 투자한 것의 가치를 회수해줍니다.


만드는 사람에게 포기는 패배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 자리를 비울 용기가 있는 팀이, 결국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조합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고, 리듬을 잡고, 제대로 보고, 제대로 평가하고,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것. 이 모든 게 돌아가려면 결국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공기—팀의 문화. 다음 편에서 그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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