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불편한 날들

아픔은 지나가지 않고, 생활로 남는다

bySusie 방글이




딸이 어렸을 때였다.


가족여행 중 눈 덮인 길에서 남편이 크게 미끄러진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다들 놀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일도 여행의 한 장면처럼 묻혀버렸다. 사진 속 우리는 웃고 있었고, 아이는 어렸고, 남편도 괜찮다고 했다.


기억은 못해도, 몸은 잘 잊지 못한다.


남편의 목은 몇 년에 한 번씩 꼭 그날을 다시 기억해 낸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목 디스크. 이번에도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목이 좀 불편하다고 했다. 잠을 잘못 잤나 보다 하며 하루를 버텼는데, 저녁쯤 되니 표정이 달라졌다. 결국 또 그 고질병이었다.


희한하게도 몸은 꼭 한꺼번에 고장 난다. 그리고 이쯤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남편의 치질 이력까지 다시 소환되는 순간이 온다.


위아래로 동시에 불편한 남편은 앉아 있기도 힘들어했고, 목 때문에 누웠다가 자세를 바꾸는 일조차 작은 결심이 필요해 보였다. 고개를 아주 조금 돌릴 때마다 "아이고…" 하는 소리가 집 안 어딘가에서 계속 들렸다.


젊을 때는 몸이 아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몸은 금방 회복됐고, 우리는 그 회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나이가 지나고 나니 아픔은 잠깐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함께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된다.


예전에는 맛집이나 여행지를 검색했다면, 이제는 어느새 목디스크 베개나 자세 교정 스트레칭 같은 것들을 더 자주 찾아보게 된다.


이상하게도 이런 순간에만 보인다. 사람 하나가 아프면 집안 전체의 리듬이 달라진다는 걸.


늘 자연스럽게 남편이 하던 요리가 며칠째 내 담당이 되었다. 문제는 내가 요리를 썩 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냉장고를 열고 5분, 다시 닫고 3분, 유튜브 레시피 2배속 재생, 결국 처음으로 돌아온다. 요리는 생각보다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남편은 위아래로 불편하고,

나는 프라이팬 앞에서 진땀을 뺀다.


목은 돌아가지 않고, 하루는 돌아간다. 당분간의 패션은 이쪽으로 고정이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친 것들도 새삼 보인다. 남편은 생각보다 자주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생각보다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이건 서로에게 동시에 오는 충격이다.


사람은 꼭 누군가 자리를 비워봐야 그 자리에 어떤 생활이 깃들어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잠깐 맡아보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꽤 편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약도 먹어야 한다. 아픈 사람은 아픈 대로 불편하고, 돌보는 사람은 돌보는 대로 서툴다. 그리고 둘 다 동시에 배고프다.


며칠째 남편은 앉는 자세를 바꿔가며 끙끙거리고, 나는 국 간을 보며 또 끙끙거린다. 집 안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신음이 떠다닌다. 전쟁은 아닌데, 평화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오래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몸이 불편해지면 일상은 생각보다 금방 흔들린다. 그 옆에서 다른 사람은 서툰 국을 끓이며, 허둥허둥 하루를 이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말보다 관리에 가까워진다. 서로를 챙기고, 살피고, 불편하지 않게 조율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찜질팩을 데워 건네고, 덜 아픈 자세를 같이 찾고, 약 먹었냐고 묻는 일들. 젊을 때는 몰랐던 방식의 다정함이다. 결국 남은 날들을 채워가는 것은 이런 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설득하지 않아도, 어느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날들.


어쩌면 오래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단은 그대로인데, 몸만 조금 느려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픈 와중에도 남편이 EXID의 ‘위아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오른다는 것.


"위 아래, 위 위 아래…"


우리는 그렇게, 위아래로 고장 난 채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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