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방식들
마트에서 바나나를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노란 곡선 하나가 그냥 과일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날에는 그 바나나가 '먹거리'라기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익는 속도를 기다리는 태도, 지금 당장 먹기 좋게 만들어 두는 감각, 혹은 조금 더 오래 두고 천천히 변해가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방식까지.
같은 바나나인데도, 진열된 방식과 익은 정도를 보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는 시간의 결이 달라 보인다.
한국에서 본 바나나는 꽤 인상적이었다. 한 팩 안에 익은 정도가 전부 다르게 들어 있었다.
오늘 바로 먹기 좋은 노란 바나나, 내일쯤 괜찮아질 바나나, 아직 초록빛이 남아 며칠 더 기다려야 하는 바나나.
처음엔 그냥 "아이디어 좋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볼수록 묘하게 한국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늘 시간을 미리 정리해 두려는 감각이 있다. 택배 도착 시간도 예상하고, 계절 음식도 제철 전에 준비하고, 김치 냉장고 안에서도 익는 속도를 계산한다.
그리고 이제는 바나나까지 "언제 먹기 좋은가"를 순서대로 배열해 놓는다.
상하지 않게.
버리지 않게.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국의 바나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관리한다.
반면 미국 마트에는 또 다른 바나나가 있다. 거의 검게 변해가는 바나나들. 껍질엔 점이 가득하고, 모양도 조금 흐물흐물하다.
한국이었다면 "빨리 처리해야 하는 과일" 취급을 받을 상태인데, 미국에서는 그런 바나나를 따로 모아 싸게 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걸 일부러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그 바나나가 끝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바나나는 이제 바나나 브레드가 되고, 머핀이 되고, 팬케이크가 되고, 스무디가 된다.
덜 익은 바나나보다 오히려 저 상태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단맛이 더 진하고 향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두 나라의 차이가 여기에도 숨어 있다.
한국은 무너지기 전에 조율하려 한다. 한꺼번에 상하지 않도록 시간을 나누고, 생활 안에 질서를 만든다.
반면 미국은 이미 변해버린 상태에서도 다른 역할을 찾는다. 지나간 타이밍을 아까워하기보다, 그 상태에서 가능한 다음 쓰임을 만든다.
그래서 한국의 바나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가깝고, 미국의 바나나는 "이미 변한 것을 어떻게 다시 사용할 것인가"에 가깝다.
이상하게도 이런 걸 보다 보면 과일 이야기인데 결국 사람 이야기 같아진다.
한국에서는 사람에게도 종종 '적절한 시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언제 취직해야 하고, 언제 결혼해야 하고, 언제 자리 잡아야 하는지. 조금만 늦어져도 "타이밍을 놓쳤다"는 말을 쉽게 듣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의외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시작한 사람이나 늦게 시작한 사람 이야기를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를 본다.
물론 그 슬롯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미 익어버린 상태를 꼭 실패로만 보지는 않는 느낌이 있다.
마트 진열대 앞에서 바나나를 보다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은 바나나가 너무 빨리 익지 않게 시간을 나누고, 미국은 너무 익은 바나나에게도 다시 역할을 준다.
둘 다 나름의 지혜다.
하나는 흐트러지지 않게 살아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변해버린 뒤에도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국은 시간을 잘 보관하는 데 능하고, 미국은 지나간 시간에서도 다시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덜 익은 바나나와 너무 익은 바나나를 함께 바라보며 산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시간도, 이미 지나버린 시간도 생각보다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다는 걸 조금씩 배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