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울진 꽃으로 피어난 내 영혼의 자화상]

1. 프롤로그: 시(詩)라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일

시는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시의 구체적인 얼굴을 대면해 본 적은 없다. 그것은 마치 대기 속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살결을 스치는 서늘한 촉감이나 나뭇잎의 흔들림으로만 자신을 증명하는 '바람'과 같다. 형상으로 붙잡을 수 없기에 시는 늘 오리무중의 깊이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는 그 아득한 신기루의 행방을 쫓아 평생을 방황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필자]

그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열정에 이끌려 나는 여섯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을 때의, 필자의 심상을 있는 그대로를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자화상을 그리려 했다. 이 시집을 마지막으로 시집은 출간치 않고 칼럼집, 시평 집만 지속적으로 출간, 하였으며 4년여를 평론의 수학을 하였으니 고단한 시간이었으며 나를 알게 하는 과정이었기에 오늘날 글쟁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의 시업(詩業)은 이 실체 없는 바람을 가두는 그릇을 빚는 과정이었으며, 내 정신의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는 치열한 자아 성찰의 연대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내 문학의 첫 단추는 고통에 대한 정직한 보고서였다. 삶의 궤적마다 묻어나는 신음, 존재의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고독의 아픔, 그리고 생의 변곡점마다 엄습하는 외로움이 얽히고설켜 나의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도구 삼아 바람의 형상을 지상 위에 구체적인 문장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이것은 단순히 슬픔을 기록하는 일을 넘어, 나의 아픈 흔적들을 서정적인 풍경화로 복원, 해내는 나만의 구원 의식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2. 사랑의 미학: 미지의 기다림에서 헌신의 아가페(Agape)로


사랑은 삭막한 생의 사막을 건너게 하는 유일한 오아시스이자, 내일을 향해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원소다. 나의 시 속에서 사랑은 인위적으로 가꾸어진 온실의 화초가 아니다. 그것은 계절의 흐름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대지의 습기와 바람의 온도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들꽃에 가깝다.

"봄 시샘에 가득 담아 / 봄비 속 아련함으로 / 아름다운 사랑 담아 / 그대 기다려 본다"—

<그리운 사람아> 중에서


꽃을 억지로 피울 수 없듯이, 사랑 역시 억지로 완성할 수 없다. 나는 기다림을 수동적인 정지가 아니라, 내면의 사랑을 더 투명하게 단련하는 ‘성숙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내 시가 노래하는 사랑이 현실의 물리적 결합보다 아득한 파스텔톤의 그리움에 닿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과학이 아니며,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동경하는 찬란한 방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미지(未知)의 그리움으로 시작된 사랑은 결국 '헌신'이라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수렴된다. 나를 버림으로써 비로소 타인을 완전히 품는 자아 소멸의 경지, 그것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사랑의 형태다.

"내 사는 날까지 / 나 버리고 부모와 같이 / 갈 것입니다 / 나를 버리고 말입니다."—


<나를 버리고> 중에서

종교적 순교와도 같은 이 고백은 가식이 지배하는 현대 슬롯에서 다소 무모하고 낯설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전한 나를 버려 부모라는 가장 숭고한 존재를 지탱하고자 하는 내 의지는, 내 문학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장 뜨거운 혈류(血流)다. 비록 나의 언어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진실 앞에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해체할 때 비로소 독자의 가슴속 굳어 있던 감동의 누선(淚腺)을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다.


3. 삶의 신음과 역설: 소음 속에서 길어 올린 미학적 광휘


문학 창작의 시발점은 늘 비루하고 고단한 현실이다. 고해(苦海)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아픔이 크면 클수록, 시는 더욱 눈부신 역설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고통의 강도가 깊어질 때 언어는 오히려 투명해지고, 시적 주체가 지닌 영혼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내 삶 역시 어둠과 미로의 연속이었다. 갈 길을 알지 못해 방황하며 숙명론적인 태도로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뒤를 보면 짧은 생 / 앞으로 보면 캄캄한 생 / (...) 온 길도 돌릴 수 없고 / 가는 길도 미로라"—


<알 수가 없습니다> 중에서


'알 수 없음'의 어둠 의식은 나를 억누르는 거대한 벽이었지만, 나는 이 벽을 문학적 연금술을 위한 가마솥으로 삼았다. 개인의 구체적인 슬픔과 외로움이 시를 향한 집념과 결합할 때, 고통은 단순한 비명이 아니라 세상을 정화하는 위안의 노래로 탈바꿈한다.


"폭풍 속 고독한 그림자의 슬픔이 / 뼛속 깊이 조여 오는 외로움과 / 공허함에 상실감과 슬픔으로 / 탄식하며 세상의 공포 허공은 / 절망감의 암흑으로 변해 간다 / 익숙해진 아픔까지도"—


<익숙해진 아픔> 중에서

내가 직면한 '익숙해진 아픔'의 실체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이자, 병든 노부모를 모시며 마주해야 하는 구체적인 실존적 고뇌였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이 공포와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을 때, 절망은 비로소 나를 단련하는 거룩한 침묵의 풍경화로 승화되었다. 아픔조차도 내 시 속에서는 생을 살아있게 하는 눈부신 배경색이 되는 것이다.


4. 꽃과 멍울의 서사: 부모라는 신성한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


나의 온 존재와 문학적 지향은 결국 '부모'라는 단 하나의 우주로 수렴된다. 세상이 아무리 물질적 가치와 개인의 안위만을 좇는 삭막한 곳으로 변할지라도, 나에게 부모는 생의 시작이자 끝이며 문학의 절대적인 영토다.


"내게는 꽃이 부모이고 꽃 멍울이 나인 것을 /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부모가 있고 내가 있기에 / 멍울진 꽃도 있다는 것을 / 말입니다"—

<꽃이 있기에> 중에서

부모는 내 생의 가장 찬란하고 향기로운 '꽃'이며, 나는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 스스로 맺힌 '꽃 멍울'이다. 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아프게 압축하고, 영양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멍울의 숙명. 이 겸손하고도 눈물겨운 낮춤은 나의 자발적 선택이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이 헌신을 통해 내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곪은 고름을 터뜨려 백골진토(白骨塵土)가 되어도 좋다고 다짐한다.


"밤이 새도록 / 가죽만 남은 노부와 / 초침이 다가 도록 / 밤을 보냈습니다 / 어쩐 일인지 / 행복했습니다"—

<하룻밤> 중에서


가죽만 남은 쇠잔한 아버지의 육신을 만지고, 거친 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를 들으며 지새우는 기나긴 밤. 그것은 타인에게는 형벌 같은 시간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신의 축복을 대면하는 가장 성스러운 하룻밤이었다. 이해타산이 지배하는 이 차가운 세상에서,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기적이기 때문이다.

병든 부모를 모시는 고통은 아름다운 상처이며, 내 이마에 새겨진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 이 애절한 가락이 나의 시를 지탱하는 굳건한 동맥이며, 내가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가장 맑고 순수한 인간애의 향기다.

5. 에필로그: 미래의 길목에서 별빛에게 길을 묻다


나의 시는 흐르는 눈물이 얼어붙어 만들어진 투명한 얼음조각과 같다. 가슴에 고인 슬픔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세찬 빗물에 심장을 적셔가며 외로움을 온전히 삭여내는 과정에서 나의 시는 더욱 견고해졌다.

"석양 붉게 노을 번지고 / 갈 길 없는 외로운 이 / 별빛에 갈 길 묻는다"—


<미로 사랑> 중에서

비록 내가 걷는 이 길이 안개 자욱한 미로일지라도, 나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밤하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별빛을 향해 끊임없이 내 영혼의 길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업(詩業)은 삶의 오타를 수정하는 차가운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거친 삶의 행간 속에 숨겨진 숭고한 사랑과 생의 가치를 찾아내어, 독자의 상처 입은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신성한 구원의 여정이다. 이 바카라을 덮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했던 독자들의 마음에 한 줄기 맑은 바람과 함께, 스스로의 삶을 비추는 고요한 별빛이 켜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고백이, 이제 당신의 삶을 해설하는 다정한 노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며 필자의 긴 시간을 지탱해 준 것이 이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때론 눈물이 길을 묻는다”] 물론 짧은 베스트셀러였지만 말이다.

2026.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

[필자의 시집]
[필자의 시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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