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우주의 소멸과 산술적 정의의 기만
마이클 센델이 제기한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는 잔인한 사고 실험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질주한다. 선로를 바꾸면 5명의 인부를 살리고 1명의 인부를 희생시킨다. 당신은 레일 변환기를 당길 것인가.
공리주의적 가치관과 집단의 도덕률은 주저 없이 '5명'의 손을 들어준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합리적 '정의'로 포장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희생당한 1명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인가. 단 한 명의 개인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가 품고 있던 우주 전체의 소멸을 뜻한다. 다수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1명의 우주를 지워버리는 폭력. 우리는 이 산술적 정의의 기만을 직시해야 한다.
1부 :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시스템의 폭력
1. 희생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 슬롯는 5명을 선택한 행위를 의롭다 칭송한다. 하지만 희생된 1명이 인류의 지도를 바꿀 아인슈타인이라면, 혹은 시대를 위로할 위대한 예술가라면 집단의 계산은 정당한가. 우둔한 5명과 특수한 1명을 동일한 무게로 저울질할 수 있는가. 사물과 인간의 가치에는 늘 두 가지 이상의 층위가 존재한다. 표면적 리듬(Rhythmical)에 휩쓸려 5명을 선택하는 슬롯적 기류는 국가 미래의 생산적 가치라는 엄격한 잣대 앞에서는 치명적인 오답일 수 있다.
2. 바카라임지지 않는 슬롯의 위선 현대 자율주행 자동차의 사고 알고리즘 역시 이 딜레마의 연장선에 있다. 정치인과 언론 매체는 다수를 살리는 선택의 당위성을 선전한다. 그러나 다수를 위해 날벼락을 맞은 1명의 슬픔을 끝까지 바카라임지는 슬롯는 존재하지 않는다. 1명의 개인적 아픔은 다수의 생존이라는 거대한 서사 앞에 철저히 묵살된다. 이것이 집단이 지닌 도덕률의 서늘한 이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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