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이럴 때 아프면 남들도 이럴 때 아프겠지, 내가 이럴 때 슬프면 남들도 이럴 때 슬프겠지, 내가 이럴 때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남들도 이럴 때 무시당한다고 느끼겠지.
이런 생각. 역지사지. 공감능력,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이런 것들이 세상을 살만한 공간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가, 지금 내 감정이 어떤가에 앞서 지금 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라는 생각.
문을 안 잡아주면 바람 때문에 문이 세게 닫혀 뒷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문을 잡아주는 것, 나보다 약한 사람이 나에게 조금 피해를 끼쳐서 기분이 나쁘더라도 내가 똑같이 하면 그 사람은 더 크게 아플 수 있으니까 참고 넘어가는 일, 노인, 어린아이, 어쨌든 나보다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들.
힘이 됐든, 지위가 됐든, 자기 패거리의 숫자가 됐든, 자신이 강자라고 느낄 때,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자폐인으로서 슬롯성이 부족해서 인생의 반 이상을 외톨이, 은따, 왕따로 지내왔다. 직접적, 간접적 괴롭힘은 당연히 덤이었다. 남들과 그나마 비슷한 건 외모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다. 외모가 그나마 튀지는 않아서 이 정도의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왔던 거라고, 그나마 내 편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승진을 하지 않았으니, 말단 사원으로 쭉 지내왔다. 어려서, 여자여서, 내 패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못해서, 눈치가 없어서, 눈치를 안 봐서, 뭔 짓을 해도 얘는 가만히 있을 것 같아서 등등 수많은 이유로 거의 늘 마이너였고,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맡은 업무의 경중과는 무관하게 더더욱 중요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땐 공부를 잘해서 반에서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은 아니었다. 공부를 빼면 투명인간이었을 것이다. 투명인간이 불투명인간이 되었을 때는 가만히 있던 나를 누군가 콕 집어 괴롭히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가끔 날 투명인간도 아니고, 괴롭힘의 타겟인 불투명인간도 아닌, 내 색깔을 가진 특별한 인간으로 봐주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선생님이나 온라인 게임 선배, 상사 덕분에 숨 쉴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만큼은 편안한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었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공감능력의 부재. 그로 인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완전히 소외시키고 무시하는 조직. 감정이 태도가 되는 연인.
일상에서 치유될 시간도 없이 하루, 또 다음 하루 완전히 무시당하고 소외당할 때, 나 자신의 소중함을 더듬어 찾아내야만 한다. 상담선생님이 해주었던 “OO씨는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이든, 나를 정말 애정하고 인정해 줬던 전 상사들이든(그들이 내게 해줬던 수많은 말들과 메시지들이든), 내게 햇볕이었던 전연인들이든 무엇이라도 찾아내서 내 마음을 안아줘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았던 사람들, 내 고통을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나름의 방법으로 함께 맞서주고 안아줬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나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를 붙잡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차례 생각했다. 바카라임감일까, 미련일까, 돈일까, 명성일까. 이것들이 다 뒤섞여있을 것이다. 속마음과는 무관하게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상처가 쌓이고, 아물기도 전에 더 쌓여서 곪는다. 이렇게 고통받으면서까지 지속할만한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가, 날 붙잡고 있는 게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다. 돈, 미련, 명성, 바카라임감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져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 자신보다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 그래서 피할 수 있는 고통을 끊어내지 못하고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쓴다고 현실이 당장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는 있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실행하고 싶은 방향에 대해서.
나 자신을 아주 솔직하게 마주하기 위해서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 속마음에 있는 답을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