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서사

by해센스

진지한 만남이 이별로 귀결되는 데는 이별의 서사가 있다.


이성적으로 헤어질 이유야 몇 가지 이유를 아주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델 수 있지만, 그건 헤어짐을 뇌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싸울 때 감정조절을 못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성실하고 바카라임감이 있지 않아서 헤어진다, 지금부터 5년 후, 10년 후, 함께했을 때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헤어진다, 만난 기간이 이 정도 되었는데, 결혼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확신(이 사람과 결혼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확신)이 더 강해져서 헤어진다 등 그럴듯한 이성적인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성을 따르는 게 맞다. 생존에, 그리고 장기적인 행복에 감정을 따르는 것보다 이성을 따르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야, 그래서 나를 불행하고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라는 이성적인 판단에서 시작된 연애일지 몰라도, 그냥 없으면 당장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철저하게 감정에 기반해 깊어지고 유지된 관계가 마냥 이성적인 판단으로 쉽사리 끝나지는 않는다.


사실 난 이성적인 판단으로 관계를 종료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그 관계가 그때는 몰랐던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너무 소중했던 관계였다. 반추하고 반성한 끝에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정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마침 마음이 약해질 만한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도 더 끝내지 못했지만, 이성적인 이유만으로 관계를 끝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도 한몫했다.


자주 싸우긴 했어도 헤어지기 직전까지 사랑하고 좋아했다. 내 온라인카지노의 시작은 그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내 전부였던 사람을 잃고 나서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얘기를 하던 사람은 오직 그였는데, 그가 없어지니까 쓸 수밖에 없었다. 이별에 대해 글을 썼지만, 이별의 서사를 제대로 쓰지는 못했다. 내가 훨씬 덜 나쁜 사람인척, 그냥 그의 잘못을 내가 용서를 못해서 최종적으로 헤어짐에 이르게 된 것처럼 썼다. 그의 ‘잘못‘이라는 것도 진짜 실체는 글에 담지도 않았다.


용서를 못해서, 그리고 그 시간을 혼자 잘 이겨내지 못하고 그 사람을 힘들게 해서 이별에 이르렀다. 용서를 못해서 헤어지게 된 것은 맞다. 그가 그렇게 잘못했나 다시 생각하면 그건 아니다. 말하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을 뿐이고, 서로 잘 대화하고 넘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완벽하게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너무 괴롭혔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무기는 우리가 만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길게 알았는데 그리고 미래도 함께하는 거였는데, 어떻게 나한테 1년 반이 되는 시간이나 중요한 정보를 숨길 수가 있었냐는 거였다.


이 연애의 이별의 서사도 비슷하다. 과거의 일이 넘어가지지가 않아서 그렇다. 작년쯤 그에게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결혼파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내 의사는 묵살하고 주최자들한테 파티를 거절 못해서 강행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불청객이 파티를 망쳤다.


이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바람에 나에게 소중한 것을 도둑맞은 것 같았고 뺏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난 너무 억울했다. 글에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상담선생님한테 파티 얘기는 언급 안 하기로 했다고 썼지만, 싸울 때마다 나는 파티 얘기를 꺼냈고 싸움이 격화됐다. 그러니까 그 파티는 왜 연거냐고 취소파티를 해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내 마음에 확신이 생겼을 때 아주 소중하게 딱 한 번만 하고 싶은 약속이었다. 동거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거나 둘 사이가 멀어진다면 이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결혼 약속은 내 마음에 확신이 들 때 조용하고 진지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마냥 그의 의지도 아니고, 내가 다시 볼 사람도 아닌 사람의 강력한 의지에 끌려가 결국 나를 동행시켰다.


내키지 않으면 안 갈 수 있는 나의 선택도 있었다. 그래서 후회한다. 헤어질 각오를 하고 불참했어야 되는 게 맞았다. 내 마음을 우선시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저버렸다. 그때는 불참하고 당장 헤어지기 싫어서 그랬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계속 싸우고 서로가 멀어지게 됐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의미가 있지도 않다. 결국 간 것은 내 잘못이다. 그리고 그 일이 결국 그때 헤어졌든, 나중에 헤어지든 이별의 트리거가 되는 일이 맞다. 마음을 모아 함께 중요한 결정을 해나가겠다는 신뢰를 깨게 된 일이니까. 그리고 그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결혼식이 싫다고 말하는 나는 사실은 결혼식이 너무 중요해서 그 누구도 망치면 안 돼서 어딘가에서 둘만 조용히 먼저 약속을 해야 할 정도로 결혼식이라는 의식에 집착하는 완벽주의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외감이 드는 게 너무 싫어서 혼자 있는 시간, 정말 나를 이해해주는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 내 인생의 가장 완벽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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