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대해 자족하지 못해서 과거와 미래에 많이 머무는 것 같다. 미래는 잘 모르니까 주로 과거에 대한 생각에 머문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혼자만의 생각여행을 떠날 때가 종종 있다. ‘그랬었지, 왜 그땐 몰랐을까, 어땠을까…’
그런데 싸우는 순간에는 현재에 머문다. 그는 막상 싸우면 잘 싸우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받아서 회피하면서, 우리가 잠시 안 싸우면 장난스레 싸우자며 격투를 신청한다. 싸워야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재밌다고 한다. 진짜로 제대로 잘 싸우지도 못하면서…
나는 싸우다가 잠깐 숨 돌리는 시간에 왜 나 스스로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잠깐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먹거나 하면서 짧게 혼자 생각하는 시간에 왜 내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나 자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평소의 나는 늘 머릿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현재의 모든 인연이 시절인연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누가 나한테 무례한 말을 하거나, 나는 진정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누군가의 편이 되어줬는데 상대방은 내게 똑같이 해주지 않을 때 ’다 시절인연이다. ‘라며 넘기는 편인데 말이다.
많은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나 혼자였다면 쓰지 않을 시간을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면서 쓰고)이 사람에게 올인하고 있지만서도, 그러니까 전혀, 그리고 절대 시절인연일지 모르니까 딱 이만큼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대하고 있지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조금은 의식적으로 평소에 사랑을 덜 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내 많은 부분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상대적으로도 지금까지의 연인들에 비해 가장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내가 아는 나에 비하여 그렇다.
가장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가진 게 늘어났으니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데 그만큼 주고 있지 않다. 그런 내 마음이 힘들다는 생각을 꽤 자주, 많이 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했을 때의 마음과 행동이 그만큼 안 나와서 힘들다고. ‘누군가를 더 많이 좋아하면서 살고 싶은데’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머물러 있다.
어쩌면 그는 싸우는 순간이야말로 내게 진정으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싸울 땐 너무 스트레스받고 지친다고 하는데 나중엔 싸우는 게 재밌다며 싸우자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싸우는 건 너무 싫고, 안 싸우고 싶다고 말하는 데에 반해서.
싸울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내 말은 치열하게 관계에 임한다.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이 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다.
평소에는 너무 솔직하고 치열하면 힘들다. 함께 지내고 초반에는 관계를 생각한답시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포기했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러면 관계는 내게 선택의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내 관심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연인 또는 부부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꼭 있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으면 된다.
내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격투를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절대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면 그 태도에 대해서만 싸운다. 아니면, 그가 장난을 치다가 도가 지나쳐서 내가 못 참아서 싸운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를 하기 위한 그런 생산적인 싸움은 없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싸울만한 거리도 없다. 그저 미래가 그려지지 않고, 그래서 미래를 그리고 있지 않을 뿐이다.
이 시간이 내게 특별히 남기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시간을 쌓고, 추억을 쌓는데 별 추억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고, 이 시간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별로 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크게 상관도 없을 것이다. 나는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는 나만의 다른 추억상자들이 있으니까. 미래의 내가 바라보면 지금 이 시간에 대해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그때 많은 생각을 했을까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주 희소한 확률로 어쩌면 그 시간들을 치열하게 잘 싸워온 우리에게 박수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싸울 때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은 황폐한 사막이다. 평소의 다정함은 슬롯화된 연출일 뿐이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황폐한 사막 같은 정원이 보인다.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누군가 제대로 나무와 꽃을 심고 정성껏 돌보아 주지 않아서 방치된 정원. 사막에 간혹 보이는 선인장처럼 뾰족뾰족하고 예민한 마음. 누가 정원에 발을 디디면, 누구냐며 나가라고 침범하지 말라고 방어와 경계태세로 돌변하는 그 혼자만 있을 수 있는 황폐한 정원.
발을 디딜 때마다 공격당하지만 어르고 달래서 이 정원을 내가 예쁘게 가꿀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내 마음은? 이미 예쁘게 가꿔진 마음의 정원을 가진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을 때나 예민할 때나 화가 날 때나 그래도 내가 꽃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목마른 정원에 물을 줄 수 있는 그런 여유 있는 마음의 정원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다시 행복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간이 내게 남기는 것을 뭘까 생각했다.
이 순간이 남기는 건 그냥 이 순간일 뿐이다. 싸울 때 마주하는 나 자신. 사랑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나 자신. 그에게 미치도록 사랑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음을 그 어느 순간보다 솔직하게 표출하는 나 자신, 이상적인 관계를 갈망하는 나 자신. 7살처럼 구는 그를 평소에 나무라면서도 나야말로 7살로 돌아가 내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고래고래 내뱉는 나 자신. 그런 내 자신을 슬프고도 생생하게, 조금은 객관적으로, 하지만 일부러 관대하게 바라보는 순간들. 강렬하게 내 마음의 정원의 빈 곳들을 마주하는 순간들, 그뿐이다.
미래를 그리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둘 다 아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머무는 이유 역시 이 사람 앞에서는 아이가 될 수 있고 그럼에도 서로를 떠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되찾기 위해서. 어린 시절에 마땅히 받았어야 되는 사랑을 그 누구보다 편안한 상대 앞에서 갈구하기 위해서. 나는 미취학아동 같은 투정으로, 그는 말썽 피우는 아들 같은 장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