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세 번째 귀로 읽는 중에 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CHaT 루틴 학습법(Chunk·Havruta·ThinkWise·Reflection·Action)으로 읽으며 쓰는 독서 에세이, 그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같은 햇빛, 다른 사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세 번째로 듣다가 1772년 11월 3일 편지에서 멈췄다. 베르테르는 아침마다 햇빛을 보면서도 기쁘지 않은 자신을 들여다본다. 예전에는 그 햇빛 하나로도 충만했는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가.
제1부의 베르테르를 기억한다. 풀잎 사이에 누워 작은 벌레들의 소리를 들으며 온 세상이 자기 안에 들어와 있다고 느끼던 청년(5월 10일). 그런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햇빛을 받으면서, 반년 뒤의 그는 텅 비어 있다. 달라진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1. Chunk — 11월 3일 편지를 덩어리로 끊어 읽다
이 편지는 베르테르가 스스로를 진단하는 편지다. 덩어리로 끊어 읽으면 진단의 순서가 보인다.
첫째 덩어리, 증상. 햇빛이 비쳐도 기쁘지 않다. 이렇게 햇빛을 보고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낯설다.
둘째 덩어리, 기억. 예전에는 달랐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기다렸고, 주시는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래서 충만했다.
셋째 덩어리, 원인. 지금은 그 샘이 말라 버렸다. 그 샘을 다시 열어 달라고 하늘에 매달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하늘은 간청한다고 비를 내리지도, 햇빛을 주지도 않는다.
넷째 덩어리, 결론. 가장 큰 불행은 그 사람 자신 안에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진단이 정확하다는 점이다. 베르테르는 자기 행복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고 있었다. 받을 때 충만했고,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말라 버렸다는 것을.
2. 행복과 불행의 분계점
이 편지를 들으며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환경이 아니었다. 햇빛은 그대로였고, 발하임의 보리수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마음의 자리였다.
받는 마음일 때 사람은 충만하다. 주시는 것을 기다리고,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받는다. 햇빛 하나, 풀잎 하나, 아이의 웃음 하나에도 마음이 가득 찬다.
요구하는 마음일 때 사람은 텅 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먼저 있고, 그것을 왜 주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 순간부터 이미 받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비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간절히 구할 수 있다. 다만 주고 안 주고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마음에 평안이 온다. 베르테르는 구하는 것까지는 했다. 그러나 맡기지는 못했다. 자기 뜻, 자기 감각, 자기 느낌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감사가 끝나고 불만이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3.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
그런데 여기서 더 아픈 질문이 생긴다. 베르테르는 알았다. 샘이 마른 이유를 정확히 진단했다. 그렇다면 왜 다시 받는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이 바카라을 세 번 들으며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만났다. 불쾌한 기분은 게으름과 같으니 몸을 일으키면 물러난다고 말하던 사람이(7월 1일), 정작 자기 우울 속으로 가라앉았다. 언짢은 기색이야말로 가장 미워하는 것이라던 사람이(7월 30일), 가장 언짢은 사람이 되었다. 로테를 덜 만나겠다고 날마다 다짐하던 사람이(7월 26일), 날마다 그 다짐을 깨뜨렸다. 그리고 이제, 행복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감사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베르테르는 그 거리를 끝내 건너지 못한 사람이다. 머리로는 길을 알았지만 발이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알면서도 못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이 25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대개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4. 볼로냐 돌, 다시
이 대목을 들으며 앞서 썼던 볼로냐 돌이 다시 떠올랐다. 햇빛을 받아 두면 어둠 속에서도 한동안 빛을 내지만, 스스로 빛을 만들지는 못하는 돌. 받은 만큼 품고, 품은 만큼 내뿜는 돌.
베르테르는 받을 때 빛났다. 받기를 멈추고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꺼졌다. 빛을 달라고 떼쓰는 돌은 없다. 돌은 그저 햇빛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받는 마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햇빛 아래 나를 가만히 놓아두는 것. 오늘 비친 만큼 감사하며 품는 것.
5. ThinkWise — 생각을 지도로 그려 보다
이 생각들을 씽크와이즈 지도로 그려 보면 이렇게 가지를 뻗는다.
```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 — 11월 3일 편지에서
두 베르테르
받는 마음 — 햇빛 하나로 충만 (5월 10일)
요구하는 마음 — 햇빛이 비쳐도 텅 빔 (11월 3일)
행복의 분계점
감사가 있는 자리
불만이 시작되는 자리
구하되 맡기는 마음
알면서도 못 한 것들
불쾌한 기분은 게으름 (7월 1일)
언짢음은 가장 미운 것 (7월 30일)
덜 만나겠다는 다짐 (7월 26일)
행복은 감사에서 온다 (11월 3일)
볼로냐 돌
받을 때 빛나고 요구할 때 꺼진다
햇빛 아래 가만히 놓이기
나의 자리
오늘 받은 것 하나 세어 보기
아는 것 하나를 사는 것으로
```
6. Havruta —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으로 묻다
이 대목을 함께 읽는 사람들과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으로 이런 질문을 나누고 싶다.
1단계 사실 확인
베르테르는 예전에 자신이 행복했던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772년 11월 3일)
베르테르는 하늘이 무엇을 간청한다고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1772년 11월 3일)
2단계 상상 추론
샘이 마른 이유를 알면서도 베르테르는 왜 받는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제1부의 베르테르가 제2부의 베르테르에게 편지를 쓴다면 무엇이라고 썼을까?
3단계 실천 적용
요즘 나는 받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요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알면서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중 하나를 오늘 살아 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7. Reflection과 Action — 돌아보며, 그리고 한 걸음
베르테르를 탓하기는 쉽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면 나에게도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거리가 있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불평하고,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붙들고,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달린다. 베르테르와 나의 차이는 그 거리의 크기일 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같다.
그래서 오늘 내가 가져갈 한 걸음은 작다. 거창하게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중 하나만 오늘 살아 보는 것. 아침에 눈을 떠 햇빛을 보면, 그것을 달라고 한 적 없이 받았다는 것을 한 번 떠올리는 것. 그 작은 감사 하나가 마른 샘에 떨어지는 첫 물방울이 될지도 모른다.
햇빛은 간청한다고 비치지 않는다. 다만 비칠 때 받는 사람이 있고, 비쳐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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