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세 번째 귀로 읽는 중에 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CHaT 루틴 학습법(Chunk·Havruta·ThinkWise·Reflection·Action)으로 읽으며 쓰는 독서 에세이, 그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한 권의 바카라에서 이렇게 많은 글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11월 북토론 바카라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듣기 시작한 뒤로, 볼로냐 돌 이야기를 썼고, 두 번을 들은 뒤에는 「하베르가 없었던 베르테르」를 썼다. 세 번째로 듣는 지금, 출근길 가을비 속에서 「자석 산을 향해 노를 젓는 사람」을 썼는데, 또 한 편의 글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이 바카라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한 청년이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편지 한 통 한 통에 사람 마음의 결이 아주 촘촘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문이 열린다. 처음 들을 때는 사랑이 보였고, 두 번째에는 그 시대의 신분 슬롯와 종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보였다. 세 번째로 들으니 중독이 보이고, 이제는 틈이 보인다.
이 바카라이 250년 가까이 읽혀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좋은 고전은 답을 주는 바카라이 아니라, 다시 읽을 때마다 새 질문을 건네는 바카라이다. 같은 문장인데 어제는 그냥 지나쳤고, 오늘은 그 앞에서 한참을 멈춘다. 바카라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문장 앞에 선 내가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전의 묘미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오늘 멈춘 곳은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돌아온 날의 편지다(7월 30일). 베르테르는 이렇게 쓴다. 다른 사람이 들어와 내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바보 같다고.
처음 두 번 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빼앗겼다니. 누가, 누구에게서?
이 편지를 덩어리로 나누어 읽으면 베르테르의 마음이 한 겹씩 드러난다.
첫째 덩어리, 인정. 알베르트가 왔으니 나는 떠나야 한다. 그는 훌륭하고 반듯한 사람이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앞에서 로테에게 입 한 번 맞추지 않을 만큼 사려 깊고, 로테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안다. 무엇보다 언짢은 기색이 없다.
둘째 덩어리, 고백. 알베르트가 오기 전에도 나는 지금 아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로테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셋째 덩어리, 뒤집기. 그런데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내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바보 같다.
넷째 덩어리, 엇나감. 알베르트가 로테 곁에 앉아 있으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바보처럼 굴며 온갖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 로테는 어젯밤 같은 장면은 제발 더는 없게 해 달라고, 그렇게 격해지면 무섭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알베르트가 올 때면 자리를 피하고, 로테가 혼자 있을 때 찾아가면 기쁘다.
둘째 덩어리와 셋째 덩어리를 나란히 놓으니 모순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처음부터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리는 처음부터 알베르트의 것이었다. 비어 있던 동안 그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베르테르였다. 빼앗은 쪽이 있다면 그건 알베르트가 아니었다.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베르테르는 순서를 뒤집어 자신을 빼앗긴 사람으로 만든다. 왜 그럴까. 피해자의 이야기를 쓰면 자기 마음에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빼앗겼으니 아파해도 되고, 다시 찾아가도 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넷째 덩어리가 그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여 준다. 알베르트가 없는 시간, 로테가 혼자 있는 시간을 골라 찾아가며 기뻐하는 마음이다. 정면으로는 다가갈 수 없으니, 비어 있는 시간과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알베르트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베르테르 스스로도 알베르트가 언짢은 기색으로 자기 행복을 깨뜨리는 일이 한 번도 없다고 쓴다(8월 10일). 그 완벽함이 베르테르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알베르트가 로테를 소홀히 대하거나 틈을 보였다면, 베르테르는 그것을 핑계 삼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틈이 없으니 명분도 없고, 명분이 없으니 마음은 더 들끓는다.
여기서 나는 우리 삶의 행복을 노리는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장 27절)고 말한다.
악은 정면으로 쳐들어오지 않는다. 단단한 가정, 서로 믿는 관계는 바깥에서 무너뜨리기 어렵다. 그래서 악은 틈을 찾는다. 그것도 큰 틈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인데, 이것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묵인하는 경미한 틈이다.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마침내 행복을 망치고 일을 그르친다. 그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는 내 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서로가 서로의 틈을 함께 살피며 지켜 주어야 한다.
로테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녀를 탓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로테는 베르테르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첫 만남 날부터 두 사람은 같은 소설을 좋아했고, 창밖 빗소리를 들으며 같은 시인을 떠올렸다(6월 16일). 바카라과 음악과 시를 함께 나누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 사람을 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마음이 알베르트와의 관계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로테는 미리 보지 못했거나, 보았어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베르테르가 오빠였으면 좋겠다고, 자기 친구와 맺어져 계속 곁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 마음(「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0일 무렵)은 다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초반에 그런 기운을 느꼈을 때 조금 더 단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즐겼다기보다는, 놓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그렇다고 로테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알베르트에게도, 베르테르에게도 자기가 지킬 수 있는 선을 지키며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베풀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초반에 잘라 내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나았을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국 베르테르 혼자 세상을 떠났지만, 로테는 그 뒤로 오래도록 이 일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선한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한 작은 틈 하나도, 무언가가 들어올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틈은 대개 다정한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이 생각들을 씽크와이즈 지도로 그려 보면 이렇게 가지를 뻗는다.
[마인드맵 이미지]
```
아주 작은 틈 — 7월 30일 편지에서
베르테르의 착각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7월 30일)
빼앗겼다는 이야기 (7월 30일)
비어 있는 시간을 찾아가는 마음 (7월 30일)
알베르트
흠잡을 데 없는 사람 (7월 30일, 8월 10일)
틈이 없어 더 초조해진 베르테르
로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기쁨 (6월 16일)
누구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다정함 속의 틈
틈을 노리는 존재
이 정도는 괜찮겠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7)
나의 자리
내가 묵인한 틈 살피기
서로의 틈을 함께 지켜 주기
```
이 대목을 함께 읽는 사람들과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으로 이런 질문을 나누고 싶다.
1단계 사실 확인
베르테르는 알베르트가 오기 전에 무엇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는가? (7월 30일)
로테는 베르테르의 어떤 모습이 무섭다고 했는가? (7월 30일)
2단계 상상 추론
베르테르는 왜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두고 '빼앗겼다'고 말했을까? (7월 30일)
로테가 말한 '어젯밤 같은 장면'에서 베르테르는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까? (7월 30일)
로테가 처음부터 더 단호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3단계 실천 적용
나는 좋은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작은 틈을 묵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곁의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오늘 내가 닫아야 할 틈은 무엇인가?
세 번째로 이 바카라을 들으며 나는 베르테르의 착각과 로테의 다정함 사이에서 오래 서성였다. 둘 다 악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더 무섭다. 큰 잘못은 경계하기 쉽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틈은 너무 쉽게 열어 두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내가 가져갈 한 걸음은 이것이다. 내 마음과 내 관계에 열어 둔 작은 틈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는 것. 그리고 혼자서는 보이지 않는 틈을 서로 비춰 줄 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묻고 듣는 것.
아직 바카라을 다 듣지 않았다. 네 번째로 들을 때는 또 어떤 문이 열릴지 궁금하다. 같은 바카라을 여러 번 읽는 일은, 결국 그 바카라 앞에서 달라져 가는 나를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큰 성벽보다 작은 문단속으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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