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세 번째 귀로 읽는 중에 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CHaT 루틴 학습법(Chunk·Havruta·ThinkWise·Reflection·Action)으로 읽으며 쓰는 독서 에세이, 그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린다. 와이퍼가 쉬지 않고 오가는 차 안에서 밀리의 서재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듣는다. 세 번째다. 처음 들을 때는 사랑에 눈이 갔고, 두 번째에는 그 시대의 신분 슬롯와 종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보였다. 세 번째로 들으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대목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고전은 이렇게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문을 열어 준다.
오늘 멈춘 곳은 7월 26일 편지였다.
이 편지는 짧지만 덩어리로 끊어 읽으면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첫째 덩어리, 다짐. 베르테르는 로테를 너무 자주 만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한다. 내일은 정말 가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둘째 덩어리, 핑계. 그런데 막상 내일이 오면 꼭 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 로테가 전날 "내일 꼭 오실 거죠?" 하고 말해 두었거나, 심부름을 맡겨 그 답을 직접 전해야 하거나, 날씨가 좋아 발하임까지 걸었는데 거기서 로테의 집까지는 반 시간 길밖에 남지 않았다.
셋째 덩어리, 끌림. 그녀 가까이에 가면 마법의 기운이 감도는 공기 속에 들어선 것 같고,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그녀 곁에 와 있다.
넷째 덩어리, 비유. 그리고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은 자석 산 이야기를 꺼낸다. 배가 그 산 가까이 다가가면 배에 박힌 쇠붙이가 순식간에 뽑혀 나간다. 못들이 모두 산으로 날아가 버리고, 이음새가 풀린 판자들 사이에서 선원들은 목숨을 잃는다.
다짐, 핑계, 끌림, 그리고 부서짐. 이렇게 네 덩어리로 나누어 놓고 보니 문득 낯익은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의 모습에 가깝지 않은가.
처음 두 번 들을 때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들으니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하는 단계를 지나 사랑이라는 상태 자체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박이나 술, 게임에 빠진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과 겹쳐 보인 것이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사랑과 중독이 같은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베르테르가 보여 주는 마음의 움직임을 도박에 빠진 사람의 마음과 나란히 놓아 보면, 그가 왜 멈추지 못했는지가 조금 더 잘 이해된다. 그 이해가 있어야 곁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도 보인다.
도박에 깊이 빠진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그 특징들을 베르테르의 편지와 하나씩 맞대어 보았다.
끊겠다는 다짐이 거듭 무너진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베르테르도 내일은 가지 않겠다고 날마다 다짐했고, 날마다 그 다짐을 깨뜨렸다(7월 26일).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는 오지 말아 달라던 로테의 부탁도 결국 지키지 못했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1일 저녁).
머릿속이 온통 그것으로 가득 찬다. 도박에 빠지면 일을 하든 밥을 먹든 머릿속은 다음 판으로 가득하다. 베르테르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녀에게가 아니면 기도조차 할 수 없고, 내 상상 속에는 오직 그녀만 보이며, 주변의 모든 것은 그녀와 관련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8월 30일).
될 듯 말 듯한 기대가 가장 강하게 붙든다. 도박을 끊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보상, 그리고 '거의 맞을 뻔한' 순간이 주는 기대라고 한다. 베르테르에게는 로테의 눈길이 그랬다. 마차가 떠날 때 로테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것이 자신을 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오히려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나를 보았을지도 몰라. 어쩌면!"(7월 8일) 확실한 거절도 확실한 응답도 아닌 '어쩌면'이 그를 계속 그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도박에 빠진 사람도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베르테르는 오랜만에 자신의 일기를 들여다보고는, 내가 얼마나 차근차근 스스로를 옭아매 왔는지 보니 놀랍다고, 이렇게 분명히 보면서도 더 현명하게 행동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적는다(8월 8일 저녁).
삶의 다른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간다. 도박이 깊어지면 일도, 가족도, 취미도 하나씩 밀려난다. 베르테르는 일을 할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무감각해지고, 바카라조차 싫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한번 자신을 내맡기면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는다고(8월 22일).
자석 산 이야기의 그 배처럼, 산에 가까워질수록 배를 붙들고 있던 못이 하나씩 빠져나간다. 일과 관계와 평정과 기쁨이라는 못들이다. 그리고 못이 다 빠진 배는 더 이상 배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 생각들을 씽크와이즈 지도로 그려 보면 이렇게 가지를 뻗는다.
[마인드맵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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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하는 마음 — 베르테르와 자석 산
증상
다짐과 무너짐 (7월 26일)
온통 그녀뿐 (8월 30일)
'어쩌면'의 기대 (7월 8일)
알면서도 멈추지 못함 (8월 8일 저녁)
삶의 못이 빠져나감 (8월 22일)
곁의 사람들
빌헬름 — 멀리서 편지로만
로테 — 거리를 두려 했지만 홀로
알베르트 — 옳은 말, 닿지 않은 공감
비를 피할 자리
우산을 씌워 주는 사람
차를 태워 주는 사람
이미 있는 처마와 나무 그늘
나의 자리
누군가의 우산이 되기
처마 밑으로 들어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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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펼쳐 놓고 보니 분명해진다. 베르테르에게는 증상의 가지가 무성한 데 비해 '비를 피할 자리'의 가지가 텅 비어 있었다.
출근길 내내 비가 그치지 않았다. 와이퍼 너머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베르테르는 마음속에 내리는 비를 피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 줄 수도 있고, 차에 태워 줄 수도 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을 그 자리에서 데리고 나오는 일처럼, 곁에 있는 사람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방법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피할 자리도 있다. 처마 밑, 큰 나무 그늘, 버스 정류장의 지붕 같은 곳이다. 비에 젖은 사람이 스스로 몇 걸음만 옮기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도박의 경우라면 전문 상담 기관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런 처마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국번 없이 1336으로 연결되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있고, 단도박 모임(GA)처럼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서로를 붙들어 주는 자리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처마 밑에 잠시 머무는 그 시간이다. 비를 피해 잠시 멈춰 서면 숨이 고르게 되고, 젖은 옷을 털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조금 더 잘 보인다. 빗속에서 무작정 걷기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길이다.
베르테르는 처마 밑으로 들어가는 대신 빗속을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마음이 견딜 수 없이 들끓으면 그는 들판을 헤매고,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다가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는다. 이 비참함의 끝은 무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8월 30일).
이 대목을 함께 읽는 사람들과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으로 이런 질문을 나누고 싶다.
1단계 사실 확인
베르테르는 로테를 덜 만나겠다는 다짐을 어떤 이유들로 깨뜨렸는가? (7월 26일)
할머니의 자석 산 이야기에서 배는 어떻게 되었는가? (7월 26일)
2단계 상상 추론
로테가 뒤돌아본 것이 자신을 본 것인지 모르는 '어쩌면'의 상태가 왜 베르테르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7월 8일)
그때 베르테르 곁에 우산을 씌워 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말을 건넸을까?
3단계 실천 적용
나에게도 '내일은 정말 그만해야지' 하면서 멈추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내 곁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우산이 되어 줄 수 있는가? 혹은 그 사람에게 처마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는가?
중독에 빠진 사람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의지가 약하다고 말한다. 알베르트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에 세 번째로 들으며 깨달았다. 베르테르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날마다 다짐하고 날마다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혼자서 싸우고 있었다. 혼자 하는 싸움은 대개 진다.
곁에 있는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판단보다 동행이다. 비 맞는 사람에게 "왜 우산을 안 가져왔느냐"고 묻는 대신, 내 우산을 조금 기울여 주는 것. 그리고 내 힘으로 다 감당할 수 없을 때는 그를 혼자 두지 않고 처마 밑까지 함께 걸어가 주는 것. 그 처마가 전문 상담일 수도 있고, 같은 아픔을 지나온 사람들의 모임일 수도 있다.
차를 세우고 교실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서도 비를 맞았다. 우산을 펴며 생각했다. 오늘은 교실에서, 그리고 내 주변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자고. 무언가에 붙들려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면, 먼저 우산을 기울여 주자고. 그리고 내가 비를 맞을 때는 혼자 버티지 말고 처마 밑으로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베르테르는 자석 산인 줄 알면서도 날마다 그 산을 향해 노를 저었다. 그 배에 함께 타서 "오늘은 노를 반대로 젓자" 하고 말해 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 한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배에 앉아 말을 걸고, 우산을 조금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했다. 세 번째로 이 바카라을 들으며 배운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오늘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을비는 곧 그친다.
다만 그때까지, 누군가는 우산을 들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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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 산을 향해 노를 젓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