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돌처럼, 빛을 품는 사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제1부를 읽다가

bySunny Sea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쓰는 독서 에세이,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하인을 끌어안고 싶었던 남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제1부를 읽다가 한 장면에서 오래 멈췄다. 일이 생겨 로테를 만나러 가지 못한 날, 베르테르는 하인을 대신 그녀에게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하인을 바라보며, 그를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워한다. 로테의 얼굴과 뺨과 옷깃에 머물렀던 그녀의 눈길을, 하인이 온몸에 품고 돌아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때 베르테르가 꺼낸 비유가 볼로냐 돌이다. 햇빛 아래 두면 그 빛을 품고 있다가, 어둠 속에서 한동안 스스로 빛을 내는 돌. 하인은 그에게 로테의 빛을 머금고 돌아온 볼로냐 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 빛나 보이는 마음. 이 장면만큼 베르테르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지순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도 드물다.



빛을 품는 돌

볼로냐 돌은 17세기 초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발견된 돌이다. 빛을 쬐어 두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돌에는 한 가지 분명한 성질이 있다.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것. 받은 만큼 품고, 품은 만큼 내뿜는다. 그리고 빛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그라든다. 다시 빛을 받아야 다시 빛날 수 있다.


이 문장을 쓰다가 문득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말

교단에 선 지 38년이 되었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그렇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열정적이냐"는 말이었다. 고마운 말이다. 그런데 이 바카라의 다른 장면을 읽으며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제1부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남편에게 고백하는 한 아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살림은 늘었는데 생활비는 그대로여서, 그동안 몰래 금고에서 돈을 꺼내 채워 왔다는 고백이다. 남편은 아내의 살림이 성경 속 과부의 기름병처럼 저절로 마르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마르지 않음' 뒤에는 누군가의 숨은 수고가 있었다. 그녀가 굳이 이 사실을 밝힌 것은, 다음에 올 사람이 같은 고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장면을 읽고 깨달았다. 세상에 정말로 마르지 않는 샘은 없다. 끝없이 헌신하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 빛을 채워 주는 원천이 반드시 있다. 나는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었다. 어쩌면 볼로냐 돌에 가까웠다.



내가 받아 온 빛들

나의 열정이 어디서 오느냐는 물음에 나는 늘 같은 답을 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낭독하고, 노래하고, 전국의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고 나눈다고. 모임에 다녀오면 꼭 한 가지 아이디어를 들고 와 교실에서 해 본다고.


돌아보니 그것들이 모두 내가 쬐어 온 빛이었다. 좋아하는 일에서 받은 빛, 함께 배우는 동료들에게서 받은 빛, 그리고 무엇보다 교실의 아이들에게서 받은 빛. 나는 그 빛을 품었다가 다시 교실에 내놓았을 뿐이다. 빛을 받지 못한 날에는 나도 금세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언제나 즐겁게 희생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에게도 빛이 사그라드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내가 받은 빛을 조금 나누어 다시 채워 주고 싶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칭찬보다, "당신도 빛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요"라는 말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베르테르가 놓친 것

다시 베르테르를 생각한다. 그는 하인에게서 로테의 빛을 보았지만, 그 빛을 오직 한 사람에게서만 받으려 했다. 하나의 빛에만 기대는 돌은 그 빛이 닿지 않는 순간 어둠에 갇힌다. 그의 슬픔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빛의 원천은 여럿이어야 한다. 좋아하는 일, 함께하는 사람들, 배우는 기쁨, 그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러 곳에서 빛을 받는 돌은 한 곳이 어두워져도 꺼지지 않는다.



빛을 내는 돌로 남기를

퇴직까지 3년이 채 남지 않았다. 언젠가 교실을 떠나는 날이 오면, 내가 아이들에게 건넨 빛도 그들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볼로냐 돌이 햇빛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빛나듯이,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그리고 그 아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빛을 건네주는 사람이 되기를. 빛은 그렇게, 품었다가 내어 주며 이어지는 것이니까.


받은 빛을 품고, 품은 빛을 내어 주는 사람.


나는 그런 돌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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