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베르가 없었던 베르테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두 번 귀로 읽고

bySunny Sea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CHaT 루틴 학습법(Chunk·Havruta·ThinkWise·Reflection·Action)으로 읽으며 쓰는 독서 에세이,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황혼의 편지와 빈 의자 (1).png



이제야 만난 베르테르


11월 고전 북토론 바카라으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정해졌다. 너무도 유명한 바카라이라 다 아는 듯 여겨 왔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이제야 이 바카라을 펼친 셈이다.


오디오로 두 번을 들었다. 《파우스트》에서 감탄했던 괴테의 표현력과 문장의 수려함이 이 젊은 날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이토록 섬세하게 언어로 붙잡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번 독서는 내가 늘 말해 온 CHaT 루틴 그대로였다. 장면을 덩어리로 끊어 듣고 멈추었고(Chunk),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AI와 묻고 답하며 생각을 나누었다(Havruta). 그렇게 나눈 생각들이 사랑에서 감정으로, 감정에서 죄와 슬롯로, 다시 사람으로 가지를 뻗어 하나의 지도가 되어 갔다(ThinkWise). 이 글은 그 지도를 펼쳐 놓고 돌아보는 기록이자(Reflection), 내 삶으로 가져갈 한 가지를 찾는 과정이다(Action).


처음 들을 때는 남녀 간의 사랑과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방식에 눈이 갔다. 그러다 불쾌한 기분과 자살과 죄에 대한 이야기에 오래 머물게 되었고, 두 번째 들을 때는 당시의 신분 슬롯와 종교적 배경,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이 흘러간 순서대로 적어 본다. 함께 읽는 분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장면마다 편지 날짜를 적어 두었다.


1. 첫 번째 읽기 — 사랑에 눈이 가다


이야기의 뼈대는 단순하다. 약혼자 알베르트가 잠시 로테의 곁을 비운 사이(6월 16일, 첫 만남) 베르테르는 로테와 사랑에 빠지고, 알베르트가 돌아오는 바로 그 순간(7월 30일)부터 베르테르의 '슬픔'이 시작된다. 바카라은 제1부와 제2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가 사랑의 시작과 이별이라면, 제2부는 그 사랑이 한 사람을 어떻게 삼켜 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처음 마음을 붙든 것은 그 사랑의 순도였다. 로테를 만나러 가지 못한 날, 그녀에게 대신 다녀온 하인조차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어 하는 베르테르(7월 18일). 로테의 눈길이 머물렀던 하인을 그는 빛을 머금은 볼로냐 돌에 비유한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앞선 글 「볼로냐 돌처럼, 빛을 품는 사람」에서 따로 적었으니 여기서는 줄인다.


그런데 두 번째 들을 때, 같은 사랑이 다르게 보였다. 제2부 끝무렵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정곡을 찌르는 충고를 한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0일 무렵). 당신이 나에게 이토록 매달리는 것은 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냐고. 오직 나에게만 마음을 묶어 두고 좁은 생활을 하니 주변의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당신의 학식과 여건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마음먹고 찾아보라고.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베르테르는 아이들에게 일요일마다 용돈을 쥐여 줄 만큼 넉넉하고(5월 27일), 자기 재능과 감성에 대한 확신도 강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유일하게 가질 수 없는 단 한 사람 앞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더 화가 나고, 그래서 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 묻고 싶어졌다.


그 충고에 베르테르는 비꼬듯 답한다. 그런 말은 인쇄해서 가정교사들에게나 나눠 주라고(같은 장면). 진심 어린 충고를 교과서 속 훈계쯤으로 깎아내리며 들어올 틈을 막아 버린다. 이룰 수 없고 옳지도 않은 사랑이라면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지혜일 텐데, 그는 한곳에 몰입하는 것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베르테르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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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쾌한 기분은 게으름과 같다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뜻밖에 오래 머문 곳은 감정에 대한 대목이었다.


목사관을 찾은 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에서(7월 1일) 베르테르는 불쾌한 기분을 게으름에 빗댄다.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날씨가 아니라, 내버려 두면 눌러앉고 몸을 일으키면 물러나는 습관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로테도 맞장구를 친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생기면 정원으로 나가 춤곡을 몇 소절 흥얼거리고, 그러면 금세 괜찮아진다고(7월 1일). 첫 만남 날에도 그녀는 마음이 어지러우면 피아노 앞에 앉아 춤추던 곡을 친다고 했다(6월 16일).


이 대목에서 마르틴 루터의 말로 전해지는 문장이 떠올랐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불쾌한 기분이 찾아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기분이 내 안에 둥지를 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베르테르는 그것을 마음의 게으름이라 불렀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짢은 기분을 죄라고까지 말한다(7월 1일). 이유가 흥미롭다. 그 기분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의 기쁨까지 빼앗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알베르트를 두고 이렇게 적는다. 그는 언짢은 기색이 없는 사람이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사람에게서 가장 미워하는 것이라고(7월 30일).


여기서 이 소설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베르테르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미덕,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을 하필 연적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부터 정작 자신은 언짢음과 우울 속으로 가라앉는다. 가장 미워한다던 것에 스스로 빠져드는 사람.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다.


3. 권총 앞의 논쟁


알베르트의 방에서 베르테르는 장전되지 않은 권총을 오른쪽 눈 위 이마에 갖다 댄다(8월 12일). 깜짝 놀란 알베르트와의 대화는 자살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알베르트에게 자살은 나약함이다. 비참한 삶을 꿋꿋이 견디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맞선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어느 정도까지만 견딜 수 있고, 그 한계를 넘으면 무너진다고. 그러니 문제는 강하냐 약하냐가 아니라 그 고통의 크기를 견딜 수 있느냐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겁쟁이라 부르는 것은 악성 열병으로 죽은 사람을 겁쟁이라 부르는 것만큼 어리석다고. 그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8월 12일).


처음엔 두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언쟁을 벌이는지 의아했다. 곱씹을수록 보였다. 베르테르를 자극한 것은 자살이라는 주제보다, 격정과 열정과 취함을 이성 밖의 것으로 깔끔하게 잘라내는 알베르트의 태도였다. 로테를 향한 격정 속에 사는 베르테르에게 그 말은 "너의 사랑은 정상이 아니다"라는 판결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그의 주장은 사실 "지금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외침이었다. 일반론의 옷을 입은 자기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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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머슴을 두둔하는 베르테르


제1부에서 베르테르는 젊은 과부인 여주인을 깊이 연모하는 한 머슴을 만나 그 순정에 감동한다(5월 30일). 그런데 제2부에서 그 머슴의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온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6일 편지 뒤). 쫓겨난 그는 새로 들어온 머슴과 그녀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를 죽이고 만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베르테르는 이 사람을 두둔한다. 그것도 로테의 아버지와 알베르트 앞에서. 나는 그 모습에서 베르테르가 그 머슴에게 자신을 겹쳐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질 수 없는 여인, 그 곁의 다른 남자. 그는 남의 사건을 변호하는 척하며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하필 알베르트 앞에서 그런 논리를 펴는 모습이 솔직히 참 어리석어 보였다.


속으로만 품어 온 로테를 향한 마음은 알베르트도 알고 로테도 안다. 그런데 이런 변호를 통해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자, 나는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도 베르테르가 무슨 일인가를 벌일 수 있겠구나 하는.


5.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는 오지 마세요


로테는 결국 베르테르에게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는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0일 무렵). 마음속에만 있던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베르테르의 결심은 점점 굳어져 간다.


마음에 사랑이 드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새다. 그러나 그 마음을 키우고, 거기에만 몰두하고, 어떻게든 이루려고 드러내 행하는 것은 내가 허락한 일이다. 그것이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죄를 낳고 불행을 낳는다.


마음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무조건 다 표현하고 행하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질서는 무너지고, 누구의 삶도 보장되지 않으며, 아무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나를 지키는 일이면서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6. 콜마의 노래가 예고한 것


약속을 어기고 찾아간 저녁, 베르테르는 로테 앞에서 자신이 번역한 오시안의 시를 낭독한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1일 저녁). 그 가운데 콜마의 노래가 있다. 콜마는 언덕에서 연인 살가르를 기다리지만, 결국 연인과 오빠가 서로 싸워 둘 다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홀로 슬퍼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 세 사람의 관계를 예고하고 있다고 느꼈다. 로테는 베르테르를 오빠로 삼을 수 있다면, 혹은 자기 친구와 맺어 주어 계속 곁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0일 무렵). 그렇다면 콜마가 잃은 '오빠와 연인'은 로테 곁의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에 그대로 겹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맞서다 모두 무너지는 이야기를, 베르테르는 하필 로테 앞에서 자기 목소리로 읽는다. 시가 두 사람의 현실을 대신 말해 버린 셈이다.


로테의 그 바람에도 나는 질문이 생겼다. 그렇게 모두를 곁에 두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또 뭐가 될까. 로테는 베르테르를 아끼면서도 자기가 지켜야 할 자리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고 그 안에서 처신한 현명한 사람이다. 베르테르는 그러지 못했다. 다만 모두를 놓지 않으려는 로테의 다정함에도 알베르트의 자리를 흔드는 그늘이 있었다.


그리고 끝내 베르테르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시 속의 두 남자처럼 서로를 해치는 대신,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자기 자신만 떼어 내는 길을 택한다. 같은 비극의 구조 안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그를 더 안타깝고 절절하게 만든다. 괴물처럼 변해 가는 그를 보며,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들었다.


7. 두 번째 읽기 — 그 시대가 보이다


두 번째로 들을 때는 사랑 너머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신분 슬롯다. 베르테르는 처음부터 신분 있는 사람들이 평민과 거리를 두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평민에게 다가가면 위신이 떨어질까 봐 피하는 사람은 패배가 두려워 적에게서 숨는 겁쟁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5월 15일). 제2부에서 공사관에 일하러 간 그는 귀족 슬롯의 딱딱한 규율과 서열 다툼에 숨 막혀 하고(12월 24일, 1772년 1월 8일), 결국 귀족들의 모임에서 신분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리를 떠나야 하는 모욕까지 겪는다(1772년 3월 15일).


그가 가난한 이들과 아이들에게 자주 돈을 건네는 모습에서는(5월 27일), 가난한 이와 과부를 돌보는 것을 덕으로 여겨 온 성경적 구제의 전통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 안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는 자부심도 함께 읽혔다. 베풂과 자존감이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종교의 잣대다. 알베르트와의 논쟁에서 베르테르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레위인처럼 지나쳐 가고 바리새인처럼 저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고 꼬집는다(8월 12일).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종교나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로 너무 가혹하게 죄인 취급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이 바카라 곳곳에 배어 있었다. 마지막 장면, 그의 장례에 성직자가 한 사람도 따르지 않았다는 짧은 문장은(「엮은이가 독자에게」, 마지막 문장) 그 시대가 고통 속에 무너진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말없이 보여 준다.


8. 아이들도 생각과 인격이 있다


두 번째 읽기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베르테르는 로테의 어린 동생이 너무 사랑스러워 번쩍 안아 들고 볼에 입을 맞춘다(7월 6일). 아이는 놀라 울음을 터뜨리고, 로테는 그러면 안 된다고 그를 나무란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샘으로 내려가 얼굴을 씻게 한다. 짧은 장면이지만 오래 남았다. 어른의 애정 표현이라도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이에게 폭력일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쉽게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취급한다.


베르테르 자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6월 29일). 아이들은 우리와 동등한 존재이고 오히려 본받아야 할 존재인데, 우리는 그들을 아랫사람처럼 다루며 아무런 의지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너희가 이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38년을 아이들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 대목은 지금 내 교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읽혔다.


9. 베르테르에게는 하베르가 없었다


두 번을 듣는 내내 마음 한쪽에 계속 남아 있던 생각이 있다. 사람에게는 자기 속마음과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 하브루타의 하베르, 마주 앉아 묻고 답하며 함께 생각해 주는 짝 말이다. 베르테르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친구 빌헬름이 있었다. 이 소설 전체가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다. 빌헬름도 답장으로 충고를 건넸다. 로테를 얻을 희망이 있으면 밀고 나가고, 없으면 사내답게 그 감정을 떨쳐 내라고. 그러나 베르테르는 말하기는 쉽다며 그 충고를 비켜 간다(8월 8일). 편지는 결국 일방적인 고백이었고, 멀리서 글로 오가는 충고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베르테르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도회 다음 날의 편지에서 그는 빌헬름이 곁에 있었다면 편지를 쓰는 대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을 거라고 말한다(6월 19일). 제2부의 첫 편지에서는 아예 고독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적는다(10월 20일). 혼자 있으면 상상력이 날개를 달고 모든 것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리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괴테는 이 아쉬움을 바카라의 맨 앞에 적어 두었다(서문). 짧은 서문에서 그는 베르테르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독자에게 말한다. 그의 슬픔에서 위로를 얻으라고, 그리고 운명 때문이든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든 더 가까운 벗을 찾지 못하거든 이 작은 바카라을 벗으로 삼으라고. 내가 읽는 내내 괴테가 이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아마 이 서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카라이 벗이 되어 주어야 할 만큼, 베르테르에게는 곁에 가까이 있는 벗이 없었다.


멀리서 글로만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그건 아니지 않니?" 하고 물어 줄 하베르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베르테르가 한계라고 믿었던 그 선은 조금 더 멀리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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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위험할 만큼 설득력 있는 문장들


솔직히 말하면 이 바카라을 들으며 조금 두려웠다. 베르테르의 말은 너무도 절절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비슷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이 바카라에 깊이 빠져든다면, 이 문장들에서 힘을 얻어 위험한 선택 쪽으로 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소설이 나온 뒤 베르테르를 따라 한 죽음이 잇따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유명인의 자살 보도 뒤 모방 자살이 늘어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베르테르의 논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읽고 싶다. 고통 앞의 무너짐을 의지나 용기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병으로 이해하자는 것(8월 12일), 정죄 대신 이해를 요구한 것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그러나 그는 한계를 고정된 것으로, 그 너머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오늘 우리는 안다. 병이라면 치료할 수 있고, 한 사람의 한계는 곁에서 함께 버텨 주는 사람과 도움을 통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베르테르에게 부족했던 것은 논리가 아니라, 그 한계선 앞에서 손을 잡아 줄 누군가였다.


11. 북토론에서 나누고 싶은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


11월 북토론에서는 하브루타 3단계 질문법으로 이런 질문들을 나누고 싶다.


1단계 사실 확인

로테는 불쾌한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한다고 말했는가? (6월 16일, 7월 1일)

알베르트는 자살을 무엇이라고 보았고, 베르테르는 무엇에 빗대어 반박했는가? (8월 12일)


2단계 상상 추론

베르테르는 왜 로테의 충고를 "인쇄해서 가정교사들에게나 주라"는 비꼼으로 받아쳤을까? (「엮은이가 독자에게」, 12월 20일 무렵)

베르테르 곁에 가까이 마주 앉을 하베르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문, 6월 19일, 8월 8일, 10월 20일)


3단계 실천 적용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나는 알베르트처럼 옳고 그름부터 따지는가, 먼저 그 마음 안으로 들어가 공감하는가? (8월 12일)

나에게는 속마음을 나눌 하베르가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하베르가 되어 주고 있는가? (서문)


12. 돌아보며, 그리고 한 걸음


두 번을 듣고 내 안에 남은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의 감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감정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 감정과 자기 입장에만 몰입하면 이성을 잃고,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베르테르는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은 혼자 견디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알베르트의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는 말도 옳고, 베르테르의 "먼저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호소도 옳다. 둘 사이를 잇는 것은 가까이에서 묻고 들어 주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바카라에서 내가 가져갈 한 걸음은 이것이다. 내 곁의 누군가에게 먼저 하베르가 되어 주는 것.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서로의 하베르가 되도록 짝을 지어 주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이 바카라을 덮으며, 내가 왜 그토록 하브루타를 붙들어 왔는지 다시 확인했다.


더 가까운 벗을 찾지 못하거든 이 바카라을 벗으로 삼으라던 괴테의 당부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바카라도 좋은 벗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운 벗이 되어 주자고.


황금빛 석양의 두 청년과 바카라들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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