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말 군주를 위한 바카라일까?

- 아무것도 모른 채 읽고, 자리를 바꿔 가며 다시 읽은 『군주론』

bySunny Sea



처음 읽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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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군주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제목만 보고 군주에 관한 무슨 이론서인가 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북토론 모임 바카라으로 정해져서 밀리의 서재로 한 번 읽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맨눈으로 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첫 장부터 놀랐다. 너무 현실적이고 실제적이었다. 사람들끼리 말로는 할 수 있어도 글로 남기기는 곤란한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써도 되나 싶은 문장이 여러 번 나왔다.

놀라움은 곧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이 사람은 권력에 대해 얼마나 많이 보고 겪었기에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헌정사에 당시 상황과 글쓴이의 목적이 나와 있긴 하지만, 나는 그 시대의 역사나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 어떤 사정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1회독을 마친 뒤, 이 바카라이 나온 배경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궁금해서 찾아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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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고 짓밟히던 이탈리아

찾아보니 15~16세기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 교황령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1494년부터는 프랑스와 스페인 군대가 번갈아 들어와 땅을 휩쓸었다. 바카라의 마지막 26장이 "이탈리아를 야만족에게서 해방하라"는 호소로 끝나는 이유가 그제야 이해됐다.


현장을 겪은 사람, 그리고 몰락

마키아벨리(1469~1527)는 1498년부터 1512년까지 피렌체 공화국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다. 프랑스 왕, 교황, 체사레 보르자 같은 권력자들을 직접 만나 보고 겪은 사람이다. 글이 이론이 아니라 현장 보고서처럼 날것이었던 까닭이 여기 있었다.


1512년, 메디치 가문이 스페인의 힘을 업고 피렌체로 돌아오면서 공화국이 무너졌다.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쫓겨났다. 이듬해에는 반메디치 음모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고문까지 받았다. 직접 가담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1513년 3월 조반니 데 메디치가 교황 레오 10세가 되면서 내려진 대사면으로 풀려났다. 그 뒤 시골 농장으로 물러나 이 바카라을 썼다.


바칠까 말까 고민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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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헌정을 둘러싼 사연이다. 1513년 12월 10일, 마키아벨리는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편지를 쓴다. '군주국에 관하여'라는 바카라을 썼고, 이를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바치려 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이 바카라을 바치는 것이 현명한지, 바친다면 직접 들고 갈지 보낼지를 다른 친구와 의논했다고 털어놓는다. 메디치가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기를 바란다는 속내도 숨기지 않았다.


줄리아노는 위대한 로렌초의 셋째 아들이자, 막 교황이 된 레오 10세의 동생이었다. 그런데 줄리아노가 1516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헌정 대상은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로 바뀐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로렌초'가 아니라 그 손자다. 교황인 삼촌의 뜻으로 1513년부터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다스렸고, 1516년에는 우르비노 공작이 된 젊은 군주였다.


여기서 묘한 점을 발견했다. 마키아벨리는 7장에서 남의 힘과 행운으로 빠르게 오른 군주는 자리를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다고 썼다. 그것이 바로 로렌초가 오른 방식이었다. 아첨만 담긴 바카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자기를 해친 가문에게 바친 바카라

생각해 보면 기막힌 관계다. 메디치는 마키아벨리를 쫓아내고 감옥에 보낸 가문이다. 그 가문에게 일자리를 구하며 바카라을 바친 것이다. 헌정사에는 화가의 비유가 나온다. 산의 모습은 평지에서, 평지의 모습은 산꼭대기에서 보아야 잘 보이듯, 민중을 알려면 군주가 되어야 하고 군주를 알려면 민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자부심으로 읽혔다.


바카라은 로렌초에게 전해졌을까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흔히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다. 마키아벨리가 로렌초에게 바카라을 바치던 날, 다른 청원자가 사냥개 한 쌍을 선물로 가져오자 로렌초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 일화는 확인되지 않은 전언이라고 한다. 로렌초가 바카라을 손에 넣었더라도 제대로 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결과만 보면 마키아벨리는 이 바카라으로 원하던 공직을 얻지 못했다. 로렌초는 1519년에, 마키아벨리는 1527년에 세상을 떠났다. 바카라은 생전에 필사본으로만 돌다가, 그가 죽은 뒤인 1532년에 메디치가 출신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출간됐다. 이미 죽은 저자가 이미 죽은 군주에게 바치는 헌정사로 시작하는 바카라이 된 것이다.


영어교사로서 멈춘 대목: 3장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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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을 전공한 사람이라 그런지 언어를 다룬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다시 찾아보니 3장, 여러 영토가 섞인 군주국을 다룬 장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새로 얻은 땅이 같은 언어와 풍습을 가졌다면 다스리기 쉽다고 말한다. 옛 군주의 가문을 없애고 법과 세금만 함부로 바꾸지 않으면 금세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언어와 풍습, 제도가 다른 땅은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그는 군주가 직접 그 땅에 가서 살라고 권한다. 가까이 있어야 문제가 작을 때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단지 말이 통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정서를 나누고, 무언가를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정바카라도 달라야 하고, 지도자의 태도도 달라야 한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지금은 지구가 하나인 시대다. 국경은 흐려지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인터넷으로 금방 알게 된다. 이런 때에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보고 익히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특히 세계 공용어처럼 쓰이는 영어를 아이들이 잘 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내 몫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마키아벨리의 처방이 결국 "가서 살아라"였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풍습과 정서 안으로 들어가 사는 일이다. 오백 년 전 정치 조언에서 외국어 교육의 원리를 만난 것 같았다.


자리를 바꿔 가며 읽기


군주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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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의 대부분은 군주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훈수 같았다. 읽다 보니 나는 자꾸 자리를 바꿔 보게 됐다. 리더가 저런 정바카라을 펼 때는 저런 이유가 있겠구나.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민중은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불편했던 대목도 3장에 있었다. 사람은 가벼운 상처에는 복수하지만 큰 상처에는 복수하지 못하니, 해칠 거면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라는 말이다. 8장에서는 잔혹함은 한꺼번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라고 한다. 찍어 누르라는 말처럼 들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15장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일에서 선하게만 행동하려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몰락한다며, 군주는 선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외세와 주변 상황, 내부 사정 때문에 선한 정치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때로는 일부러라도 악한 군주가 되라는 말로 들렸다.


민중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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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반대편에는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곧 민중이 있다. 17장과 19장을 읽으며 이 민중, 군중의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17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을 사는 것 가운데 무엇이 나은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꿰뚫는다. 사람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재산을 잃은 일을 더 오래 잊지 못한다. 그러니 군주는 백성의 재산에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19장에서는 재산과 명예만 건드리지 않으면 대다수 사람은 만족하며 산다고까지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자기 밥그릇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사람들은 군주가 악한 일을 해도 크게 항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씁쓸했지만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군중 그 자체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런데 찾아보니 반대쪽 근거도 같은 바카라 안에 있었다. 9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나라 안의 두 세력을 비교한다. 귀족은 백성을 억누르려 하지만, 민중은 그저 억눌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욕심 많은 귀족보다 바라는 것이 소박한 민중을 기반으로 삼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권한다. 20장에서는 성벽과 요새 이야기를 하다가,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요새는 민중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그는 민중을 불신한 걸까, 아니면 리더가 반드시 얻어야 할 가장 확실한 기반으로 본 걸까. 나는 그가 민중을 이상화하지도, 깔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보았기에 그 마음을 잃으면 끝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 교실에서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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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루틴 학습의 하나로, 중3 아이들에게 정기 필기시험 범위 단원의 본문으로 하브루타 3단계 질문을 만들게 했다. 아이들은 질문과 함께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구글 설문으로 제출했다. 설문에는 이 활동이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묻는 문항도 넣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딱 한 아이에게서 이런 피드백이 들어왔다. 시험이 코앞인데 질문을 만드느라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니, 이런 활동은 좀 더 여유 있을 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활동에는 앞선 과정이 있었다. 시험 부담이 없거나 적은 동아리와 주제선택 시간에 한 학기 내내 해 보면서 효과를 확인했고, 아이들도 스스로 배움이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힘을 얻어 중3 영어 시간에도 하브루타 3단계 질문 만드는 법을 미리 가르치고, 과감히 한 시간을 내어 실습하게 했다. 우수한 학생은 물론이고, 평소 수업을 어려워하거나 관심 없어 하던 학생들까지 색다른 방법을 반겼다. 본문 내용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시험공부 마무리를 겸해 이 활동을 다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질문과 답을 서로 볼 수 있는 플랫폼에 동시에 올렸고, 그 내용을 복사해 구글 설문으로 제출하며 피드백도 함께 남겼다. 굳이 두 곳에 올리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친구가 만든 질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험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질문과 설문을 다 마친 뒤에는 친구들의 질문도 살펴보며 공부하라고 했다.


시험 직전에는 관례가 있다. 영어 시간이라도 시험 범위 진도를 다 나갔으면, 다른 과목도 공부할 수 있도록 자습 시간을 주곤 한다. 그 아이는 아마 그런 시간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을 시작하며 이것도 시험공부의 하나라고 말했고, 다 해서 제출한 사람은 남은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해도 된다고 했다. 속으로는 대부분 질문을 형식적으로 대충 만들어 내고, 설문에 답한 뒤 시험공부에 몰두할 줄 알았다. 나는 학습뿐 아니라 모든 일에 골든타임이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수업을 촘촘하게 진행해 온 터라 시험 직전에야 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니 시험공부가 급한 학생들이 대충 내더라도 눈감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질문을 만들었다. 설문에도 긴 피드백이 들어왔다. 종이 치기 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았고, 다른 반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두 시간 실습해 보고 만든 것치고는 질문의 수준도 매우 훌륭했다. 이렇게 진심으로 질문을 만들기에 효과가 있는 것이리라. 반 이상이 그 아이와 같은 마음일 수도 있다고 예상했던 나는, 차시 내내 열심히 질문을 만드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놀랐다. 아이들이 하브루타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마키아벨리는 다수인 민중의 미움을 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목소리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시에 군주에게도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나 역시 여러모로 따져 본 끝에 그때가 하브루타 3단계 질문 만들기의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리더가 결정을 내릴 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다수의 형편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론에만 기대지 않고 실제 상황과 경험에서 나와야 한다. 마키아벨리도 헌정사에서 자신이 바치는 것은 오랜 실제 경험과 옛 역사에 대한 꾸준한 공부로 얻은 지식이라고 했다. 15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나라를 그려 왔지만, 자신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진실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내 판단도 바카라상 위의 계산이 아니라 동아리와 주제선택, 그리고 중3 교실에서 직접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그 한 아이의 목소리는 마음에 남았다. 다음에는 시험이 임박한 때가 아니라, 좀 더 여유 있을 때 이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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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사람 이상 모인 자리에는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굳이 군주의 자리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교실에도 권력은 있다.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규칙을 세우고, 말할 기회를 나누고, 평가를 한다. 그것이 교사인 내가 쥔 권력이다.


교사는 이 권력을 어떻게 얻었을까. 스스로 교실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발령이라는 제도가 자리를 주어서 '군주'가 된다. 7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자기 힘이 아니라 남의 힘과 운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자리에 오르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교사도 그렇다. 자격증과 발령은 권한을 주지만 권위까지 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교사는 해마다 3월이면 새 영토를 얻는다. 6장의 말처럼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가장 어렵다.


그 권력을 나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착한 교사가 되려다 지켜야 할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은 없는지, 반대로 옳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몰아붙인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15장의 '선하지 않을 줄 아는 것'을 교사의 자리로 옮긴다면, 악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단호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7장의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사는 편이 안전하다"는 말도 교실로 옮기면 뜻이 달라진다. 마키아벨리는 두려움을 사되 미움은 피하라고 했다. 교사에게 두려움이란 겁주기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이 미리 알 수 있는 원칙일 것이다. 아이의 자존심과 공정함만 건드리지 않으면, 엄격해도 미움받지 않는다. 19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변덕스러운 군주가 경멸받는다고 경고한다. 교실에서도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른 교사가 가장 빨리 권위를 잃는다.


다만 비유가 갈라지는 지점도 있다. 18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좋은 성품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고, 갖춘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뿐, 가까이에서 직접 겪어 보는 이는 드물다는 이유다. 그러나 학생들은 매일 교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겪는 사람들이다. 교사는 갖춘 척으로는 버틸 수 없다. 군주의 권력이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교사의 권력은 아이들이 결국 교사 없이도 날 수 있도록 언젠가 내려놓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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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잠깐 꺼냈던 18장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를 읽다가 바카라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정말 이 바카라이 군주를 위한 바카라인가?"


마키아벨리는 이 장에서 사람들은 대개 손으로 만져 보고 판단하기보다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군주의 겉모습은 볼 수 있지만,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직접 겪어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소수는 국가의 위엄을 등에 업은 다수의 생각에 감히 맞서지 못한다. 결국 보통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 번역본 각주는 이 소수를 권력의 실상을 경험하고,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풀이한다.


마키아벨리는 자기 시대의 한 군주를 예로 든다. 번역본 각주에 따르면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다. 그는 입으로는 늘 평화와 신의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둘 다에 적대적이었다. 만약 그가 말한 대로 실천했다면 명성이든 권력이든 여러 번 잃었을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이 대목을 읽는데 이번 시험 범위인 5단원의 제목이 떠올랐다. Can you spot fake news? 가짜 뉴스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배우는 단원이다. 민중은 바로 이 spot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익혀야 한다. 보이는 것을 액면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하고, 보이는 것 뒤에 숨은 의도를 알아차리는 눈이 있어야 한다.


옛날의 군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물론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리더, 가정의 부모, 곁에서 나를 이끌어 주는 누구에게나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 속사정과 의도가 있다. 그것이 선한 의도인지 악한 의도인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알아보려고 애쓰다 보면 그 사람의 속사정도 보이고, 도와야 할지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도 생긴다.


『군주론』을 읽으며 내 자리를 참 많이 생각했다. 나에게 권력을 가지고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그 사람은 이런 마음과 이유로 그렇게 행동했겠구나. 그때 내가 그렇게 대응한 것이 맞았구나.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못했구나. 나에게는 이런 군주의 모습이 없었을까. 그때 교사로서의 권위가 잘 서지 않았던 건 아마 이런 이유였겠구나.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묻는다. 이 바카라은 군주만을 위한 바카라이었을까. 실제 경험과 공부를 두루 갖춘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의 특정 시대, 특정 인물을 위해 쓴 바카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바카라은 모든 사람에게 권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권력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넌지시 알려 준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군주론』은 군주에게는 권력을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안내서이지만, 민중에게는 권력을 읽는 법을 알려 주는 바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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