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출근길, 수원화성에서 만난 CHaT 루틴의 시선
가을이 성큼 다가온 9월의 끝자락, 아침 출근길 운전대를 잡고 수원화성 성곽길을 달린다.
창밖으로 올려다본 동문(창룡문) 일대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러 가슴이 탁 트인다. 맑은 공기와 푸르름을 건네는 가로수 길을 지나 장안공원 곁을 지나칠 때, 눈길을 사로잡는 정겨운 풍경 하나를 만났다.
키 큰 은행나무들이 노란 우산을 거꾸로 펼쳐 놓은 듯한 단정한 그물망 받침을 두르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눈부신 황금빛 풍경과 맑은 공기를 선물하지만, 바닥에 후드득 떨어진 열매는 이내 짓밟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보행자들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운 가을의 불청객, 그 은행 열매를 받아내기 위해 수원시에서 정성스레 설치해 둔 '낙과 수집망'이었다.
더 마음에 와닿은 것은 나무 기둥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글귀였다.
"은행나무야 고마워."
도심의 공기를 정화해 주고, 해마다 고운 단풍으로 그늘과 쉼을 주는 너의 존재가 참 고맙다고, 그러니 떨어지는 열매로 인한 불편은 우리가 지혜롭게 품어내겠다는 다정한 고백이 적혀 있었다.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열매 냄새가 지저분하고 성가시다고 해서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탓하는 대신, 나무의 소중한 가치를 먼저 인정하고 고마움을 전하면서 단점은 ‘노란 그물망’이라는 아이디어로 슬기롭게 보완해 낸 것이다. 시민들의 발걸음은 쾌적해지고,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서 온전히 제 빛깔을 지켜낸다. 참으로 지혜롭고 따뜻한 공존의 방식이다.
이 다정한 배려의 기술을 바라보며, 교실과 일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실천해 온 CHaT(Chunk, Havruta, ThinkWise) 루틴의 본질을 떠올렸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배움과 사람에게도 은행나무와 같은 양면이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통통 튀는 창의력이라는 눈부신 잎을 가졌지만 때로는 산만함이라는 짙은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어떤 지식은 너무 방대하여 어디서부터 받아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Chunk (의미 덩어리 묶기): 바닥에 무분별하게 흩어져 터지면 골칫거리가 되는 은행 열매를 노란 그물망으로 한곳에 모으듯, 흩어진 복잡한 생각과 단점들을 잘 모아 '의미 있는 덩어리'로 정돈해 주는 작업이다.
Havruta (따뜻한 질문과 대화): "냄새나니 치워버리자"가 아니라 "공기를 맑게 해 줘서 고마워"라며 은행나무의 존재 가치를 먼저 알아봐 주는 태도. 서로의 부족함을 들추기보다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질문을 통해 다정하게 해결바카라을 찾아가는 하브루타의 정신과 닮았다.
ThinkWise (구조화와 시각화): 나무의 형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열매가 모이도록 설계된 우산 모양의 망처럼, 생각의 가지를 체계적으로 엮어 문제를 창의적이고 명쾌하게 해결하는 시스템적 지혜다.
단점을 없애기 위해 장점까지 잘라낼 필요는 없다.
부족한 점은 배려와 구조화된 루틴의 '노란 받침'으로 부드럽게 받아내고, 본래 지닌 고유한 빛깔과 가치는 마음껏 푸르게 펼치도록 돕는 것. 그것이 교육이고, 성숙한 삶의 태도이며, 행정이 시민에게 건네는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아침 햇살이 성곽 너머로 환하게 부서져 내린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다정한 지혜를 품고 서 있는 장안공원의 은행나무들을 보며 나 역시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이들의 단점 뒤에 숨은 고마운 빛깔을 먼저 바라보겠노라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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