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걷다가 만난, 나를 닮은 사물 하나
하늘이 흐리다.
그런데 기분 좋은 흐림이다.
한동안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뜨겁던 공기가 어느새 한풀 꺾였다. 9월 10일, 달력으로만 오던 가을이 오늘은 바람을 타고 온 것 같다.
시원하다.
아이들과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나는 3학년 학생들과 파워워킹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새로 들어온 학생들도 몇 명 있다.
이 동아리를 만든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을 가끔은 학교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바깥바람을 쐬며 걷고,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었으면 했다.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회복시킨다.
바카라상 앞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교실 안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몸을 움직이며 걷는 시간이 아이들의 정서에도 작은 숨구멍이 되어 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아르피아 체육공원까지는 한 시간 안에 걸어서 다녀오기에 알맞은 거리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 동아리는 그냥 걷기만 하지는 않는다.
매번 작은 미션 하나가 따라간다.
지난 시간의 미션은 **‘하늘의 구름을 찍고 무엇을 닮았는지 표현하기’**였다.
아이들은 같은 하늘을 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는 동물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어떤 물건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엉뚱한 무엇이었다.
오늘의 미션은 조금 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나를 닮았거나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사물 하나를 찾아 사진으로 찍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걷다가 만나는 수많은 것 가운데 ‘나와 닮은 것’을 찾으려면 잠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진 한 장을 찍는 짧은 미션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걷기가 끝날 즈음에는 Google 설문으로 러닝 로그(Learning Log)도 남긴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짧게라도 글로 기록하게 한다.
그 기록은 그날의 활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학기 동안 차곡차곡 쌓인 기록을 다시 보면 아이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동아리 활동을 정리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에도 교사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남긴 기록을 통해 그 아이의 활동과 성장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한 시간이 참 좋다.
오늘 아이들은 아르피아 체육공원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기도 한다. 교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느슨한 표정들이다.
조금 있으면 다시 일어나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대단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함께 걷고, 작은 미션 하나를 수행하고, 돌아와 자신의 생각을 몇 줄 기록한다.
그런데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만 미션을 줄 것이 아니라, 오늘은 나도 한번 해보자.
아이들에게
‘너를 닮은 사물을 찾아보라’고 했으니
나도 나를 닮은 사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걷던 길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신호등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호등을 찍었다.
신호등은 늘 달리라고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추게 하고,
때로는 기다리게 하며,
때가 되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열정적으로 달려야 할 때는 힘껏 달렸고, 때로는 멈추어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다시 초록불이 켜지면 또 새로운 길을 향해 걸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도 무조건
“가!”라고만 말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멈추어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시 출발해야 할 때를
함께 바라봐 주는 신호등 같은 사람이고 싶다.
오늘 아이들에게 내준 미션 하나가
돌아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어떤 불빛 앞에 서 있는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빛을 보여 주고 있는가?
9월의 시원한 바람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오늘 나는, 나를 닮은 신호등 하나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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