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에게 배신감을 느낀 새벽

아이들과 함께 토론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bySunny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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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여섯 시 반.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매달 이 시간에 베이트호크마 고전인문 독서토론이 열립니다. 9월의 바카라은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였습니다.


오늘은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키즈호크마 초등 고학년 친구들이 함께 자리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만의 모임에서 이미 한번 다뤘던 바카라이라, 어른들 모임에 참여해 토론하는 법도 배우고 낯선 어른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내보는 경험도 해 보라고 대표님이 초대하셨습니다. 사전에 모임에 공지하고 동의를 얻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어른들만 앉아 있던 새벽 줌 화면에, 부모님과 함께 작은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왔습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스스로 일어나 고전을 이야기하러 온 아이들. 그 장면만으로도 오늘은 이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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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쏟아진 십 분


우리 모임은 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7시 26분부터 몇 분 사이에 이런 질문들이 화면에 올라왔습니다.


지킬은 왜 하이드를 만들었을까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내 안의 하이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물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이드는 처음에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하이드를 만든 불순물은 무엇일까?


지킬 박사의 마지막 죽음을 볼 때, 악이 선을 이긴 것인가, 선이 악을 이긴 것인가?


지킬은 하이드로 살고 싶었던 걸까, 지킬로 살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죽음은 지킬로 죽은 것인가, 하이드로 죽은 것인가?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른의 질문과 아이의 질문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누구의 질문인지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좋은 텍스트 앞에서는 나이가 큰 변수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새벽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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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감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바카라을 읽는 내내 지킬 박사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번에 주의 깊게 읽기 전까지 저는 이 작품을 이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함께 있고, 악을 그대로 두면 점점 자라 결국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지킬 박사는 그 위험한 실험을 하다가 변을 당한 학자라는 것. 대개 그렇게들 요약하지요.


그런데 하이드를 만든 의도를 읽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배신감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숨겨진 욕망과 죄성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위신은 그대로 지키면서,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발산하고 즐길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악을 제거하는 실험이 아니라 악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심지어 죽은 뒤에는 살아보지 못한 하이드로 살겠다는 듯 유언장까지 미리 써 둡니다. 그리고 하이드가 되어 저지른 범죄를 들키지 않자 점점 대담해집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실험이 실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험은 오히려 성공했습니다. 실패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토론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유혹을 실제로 받는다고요. 다 이상 이룰 것이 없어보이는 주변에 있는 높은 지위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킬 박사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이룰 만큼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존경받는 의사였고 능력도 명예도 있었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이미 다 가진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위험합니다. 이룰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은 목표를 향해 달리느라 곁길을 볼 틈이 없지만, 다 이룬 사람은 그제야 자기 안의 것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씩 시험해 봅니다. 들키지 않고 넘어가면, 성공하면, 더 대담해집니다. 그렇게 돈으로, 이성으로, 술로, 약물로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명예나 부를 최종 목표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이 곧 위험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갈 곳이 없어진 사람은 옆으로 가거나 아래로 갑니다. 지킬 박사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는 올라갈 만큼 올라간 뒤에,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만들었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대개 직업 이름이 돌아옵니다. 그 자리에 도착한 다음에는 무엇으로 살 것인지, 우리는 잘 묻지 않습니다. 지킬 박사는 그 질문을 받아 본 적 없이 정상에 도착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오늘 가장 뜨거웠던 질문


토론이 끝난 뒤에 한 선생님이 톡방에 던지신 질문이 제게 오래 남았습니다.


지킬이 하이드를 악으로, 자신의 나머지 부분을 선으로 규정할 때 그 근거는 무엇인가. 하이드의 행위 때문인가, 아니면 하이드가 슬롯적 체면과 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 때문인가.


지킬의 분류 자체를 의심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킬은 하이드가 무슨 짓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첫 변신에서 거울을 본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행위는 아직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든 근거라고는 얼굴에 드러난 인상, 그를 마주친 사람들이 느낀 설명할 수 없는 혐오감, 자신보다 작고 덜 자란 몸 정도였습니다. 근거라기보다는 인상에 가깝지요.


대표님은 본문에서 하이드만이 순수한 악이었다고 지킬 스스로 말하는 대목을 짚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래니언 박사의 편지 부분을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이드의 정체를 알게 된 뒤 래니언이 느낀 그 감정의 원인이 인간의 깊은 본성에 닿아 있으며, 단순한 증오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저절로 악이라 규정해 버리는 그 본성의 자리를 더 탐구하고 싶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또 한 분은 한 줄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곧바로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겠다고요.


그리고 시간이 부족해 끝내 나누지 못한 질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욕망을 모두 악이라 할 수 있는가.


저는 이 질문이 오늘 나온 것 중에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킬의 이야기는 결국 여기에 걸려 있으니까요. 그가 하이드에게 넘겨준 것이 정말 악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억눌러 온 욕망이었는지에 따라 이 소설의 결론이 달라집니다. 욕망이 곧 악이라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절반이 악인 셈이고, 욕망이 악이 아니라면 지킬이 나눈 선과 악의 경계는 처음부터 잘못 그어진 것이 됩니다.


한 걸음 더 가면 이런 물음도 따라옵니다. 그렇다면 지킬 쪽에 남은 것은 정말 선이었을까. 우리가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근거도 혹시 아직 들키지 않았다는 것뿐은 아닐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 따로 토론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저는 오히려 이 모임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은 그날 끝나지 않고 다음 자리까지 걸어가니까요.



마음이 간 사람은 어터슨이었습니다


지킬에게 화가 났던 만큼, 어터슨 변호사에게는 마음이 갔습니다.


바카라임감, 친구를 향한 마음, 끝까지 놓지 않는 호기심, 흔들리지 않는 직업의식. 그는 곁에 있었고, 물었고, 기다렸습니다. 소설 내내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면서, 끝까지 친구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친구에게조차 자신을 내놓고 의논하지 못한 지킬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도 완벽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지 못했구나. 어둠은 숨겨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을 때 자랍니다.


그러다 문득 저를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이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일 것입니다.


제가 찾은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 이름으로 살기. 지킬은 어두운 자아에 다른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을 바꾸면 바카라임도 사라진다고 믿었지요. 저는 제 것을 제 이름으로 부르려 합니다. 그래야 고칠 수 있습니다.


둘째, 혼자 다루지 않기. 친구에게, 안전한 사람에게 꺼내어 함께 의논하는 것입니다. 어터슨 같은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끝내 입을 열지 않은 것이 지킬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셋째, 제거하려 하지 말고 다스리기. 악은 언제나 존재하고 뿌리 뽑히지 않습니다. 없애려 할수록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더 크게 자랍니다. 지킬이 증명한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산바카라으로, 독서 토론 모임으로 자기 안의 하이드를 다스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다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혼자 두지 않는 것. 지킬이 끝내 하지 못한 그 두 가지입니다.


생각해 보면 새벽에 모여 바카라을 펼치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시간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하이드를 데리고 와서, 함께 들여다보고 돌아갑니다.



아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


토론 주제에 몰입하느라 정작 아이들에게 직접 칭찬을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 모임이 끝난 뒤 단톡방에 이렇게 적어 전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부모가 하는 칭찬보다 바깥 어른이 해 주는 칭찬이 훨씬 크게 남는다는 것을 알기에 더 아쉬웠습니다.


토요일 새벽 토론 모임에 나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합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일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그걸 해낸 것도 대단하고요. 엄마를 깨우지 않고 혼자 줌에 들어온 친구, 정말 멋집니다.


한 선생님이 남기신 한 줄이 오늘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기쁨이라고요. 또 다른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해서 더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질문이 풍성해진 새벽


사실 저에게는 오늘 자리가 하나 더 특별했습니다.


지금 저는 《질문하는 인문학》 SERIES 2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SERIES 1은 「나를 깨우는 여섯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설국, 죽음에 이르는 병, 화씨 451, 니코마코스 윤리학, 티마이오스, 메논 여섯 편을 담았습니다. 청소년이 고전을 읽고 컬러링을 하며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짝과 나누고, 생각지도로 정리한 뒤 자기 삶으로 가져가도록 구성한 워크북입니다. 제가 38년간 교실에서 다듬어 온 CHaT 루틴(Chunk, Havruta, ThinkWise, Reflection, Action)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학생 독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올해 8월 수정 1쇄를 냈습니다.


이어서 준비 중인 SERIES 2의 부제는 「세상을 마주하는 여섯 고전」입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데서 나아가, 세상과 부딪치는 질문들을 담으려 합니다. 수록 작품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사도 바울의 로마서 여섯 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다음 달에 읽을 《군주론》도 모두 SERIES 2 안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군주론》은 아직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 새벽에 처음 제대로 만나게 될 텐데, 그 자리에서 또 어떤 질문을 받아 오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제 부지런히 《군주론》의 바카라장을 넘겨야겠습니다.


그런데 지킬 박사 편을 만들 때 가장 오래 붙들었던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의 계단을 어디에 놓아야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까지 걸어올 수 있을까. 자칫하면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뻔한 결론으로 끝나 버리기 쉬운 작품이거든요.


오늘 새벽은 그 고민에 답을 준 자리였습니다.


물약의 정체를 묻는 아이의 호기심, 죽음의 주체를 묻는 날카로움, 지킬의 분류 근거 자체를 흔드는 질문, 욕망을 악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물음까지. 혼자 바카라상 앞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았을 질문들이 한 시간 만에 쏟아졌습니다. 원고에 담아 둔 질문들이 실제 토론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질문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태어난다는 것.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인데, 오늘은 제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매달 좋은 바카라을 골라 오시는 대표님과, 귀한 식견을 나눠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못 일어난 아이들이 있어 조금 아쉬웠지만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대표님이 모임을 닫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세대와 고전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아 온 베이트호크마가 키즈호크마 초등 고학년팀 서너 명과 첫 새벽 나눔을 했다는 것. 저는 그 자체가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대를 잇는다는 말은 대개 어른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는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배우러만 온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왔고, 그 질문이 어른들의 생각을 열었습니다. 한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세대가 마주 앉으면, 물려주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발견하는 자리가 됩니다. 오늘이 그 첫 자리였습니다.


새벽에 아이들을 깨워 보내 주신 부모님들,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 들어온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다음 달 토론 바카라은 10월 3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입니다.


사랑받는 군주와 두려운 군주 사이에서, 우리는 또 어떤 질문을 만나게 될까요?



《질문하는 인문학 — 청소년을 위한 사유 훈련 SERIES 1》(부제: CHaT 인문고전 컬러링 하브루타)은 가족의날에서 펴냈습니다. SERIES 2 「세상을 마주하는 여섯 고전」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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