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판의 주황색 불빛이 켜질 때

- 삶을 진단하는 우리만의 신호

bySunny Sea



화요일 퇴근길, 차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빗속을 뚫고 집 근처 셀프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 등 전 세계적인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요즘입니다. 원유 수급 불안정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어느덧 리터당 1,998원, 그야말로 2,000원을 목전에 둔 고유가 시대의 한복판입니다. 기름 게이지가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쓰리지만 차를 안 몰 수도 없으니,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10만 원어치를 주유했습니다.


그날따라 마음 한구석에는 은근한 분주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비는 내리고 기름값은 비싸 속상한 데다, 머릿속은 온통 집에서 하루 종일 육아에 힘을 쏟았을 딸아이 생각뿐이었습니다. 손주가 태어난 이후, 퇴근하자마자 얼른 딸의 집으로 달려가 서툰 초보 엄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잠시만이라도 손주를 봐주는 것은 어느새 제 삶의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유를 마친 후 신용카드와 영수증을 부랴부랴 챙겨 들고 무심히 운전대를 잡았던 그날의 발걸음은, 바로 다음 날 퇴근길에 뜻밖의 브레이크를 만났습니다.


계기판 한구석에 낯선 주황색 불빛이 픽 하고 켜진 것입니다. 수도꼭지 같기도 하고 작은 엔진 같기도 한 모양 아래, 선명하게 적힌 네 글자— 'CHECK' 불빛이었습니다.



가다가 차가 덜컥 멈춰 서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덜컥 겁이 났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곧장 온라인 게임 근처 단골 공업사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님은 허허 웃으시며 "당장 운전하는 데 힘이 딸리거나 큰 이상이 없다면 위험한 건 아니니, 내일 아침에 편하게 점검받으러 오세요"라며 저를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목요일 오늘 아침, 출근길에 서둘러 공업사에 들러 차 키를 건넸습니다. 점검을 부탁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문득 차 뒤꽁무니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어라, 주유구가 삐죽이 열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속을 들여다보니 있어야 할 주유구 캡이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그제야 '아차!' 하는 순간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틀 전 비 오는 셀프 주유소에서 캡을 돌려 열고는 차 트렁크 위에 잠시 올려두었던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기름을 넣으면서 얼른 딸에게 가야지 생각하느라, 영수증과 카드만 쏙 뺀 채 마개 닫는 것을 깜빡 잊고 그대로 출발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 동그란 플라스틱 마개는 아마 도로 어딘가로 굴러떨어졌을 테지요.


그 이야기를 전하니 공업사 사장님은 "아이고, 원인이 바로 여기 있었네요! 주유구 캡이 열려 있으면 압력이 빠져나가서 엔진 체크등이 들어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공업사에 차를 오래 맡겨둘 이유가 없어졌기에, 우선 차를 다시 몰고 나와 안전하게 주차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화요일에 갔던 셀프 주유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워둔 것은 없다고 했지만, 제 차종을 묻더니 마침 매장에 맞는 주유구 캡 여분이 있으니 그냥 와서 가져가라고 흔쾌히 말해주었습니다. 퇴근 후에나 갈 수 있다고 하자, 아침 전화를 받으신 오전 근무자분이 "그럼 교대하는 오후 근무자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 이따 오셔서 받아 가세요"라며 다정하게 응대해 주셨습니다.


정신없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드디어 기다리던 퇴근길에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셀프 주유소였지만 현장을 관리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주유구 캡에 대해 조심스레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미 오전 근무자에게 인계사항을 전달받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주유구 캡 하나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이 차종에 딱 맞을지 모르겠네요" 하시며 직접 차 뒤꽁무니로 가 캡을 끼워보시더니, "아, 다행히 딱 맞습니다!" 하고 튼튼하게 꼭 닫아걸어 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전 근무자분이 저를 배려해 교대자에게 잊지 않고 메모를 남겨주신 정성, 그리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마개를 꼼꼼히 끼워준 오후 근무자분의 친절함이 시린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주었습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인연에도 이토록 마음을 써주는 다정한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며, '아, 세상은 아직 참 아름답고 살만하구나' 하는 든든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분께 마음을 담아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주유소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주유소를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계기판을 확인해 보아도, 주황색 'CHECK'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선명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마개도 제대로 끼웠는데 왜 안 꺼질까?' 다시금 걱정이 고개를 들 찰나, 낮에 틈틈이 인터넷으로 조사해 두었던 자동차 정보가 떠올랐습니다.


저처럼 당황할 운전자들을 위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주유구 마개를 다시 바르게 닫았다고 해서 체크등이 곧바로 꺼지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차량 내부의 컴퓨터가 연료 탱크의 정상 압력을 다시 인지하고 누출 오류 코드를 스스로 지우기까지는, 보통 몇십 킬로미터 이상 주행하거나 며칠 동안 수차례 시동을 걸고 주행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불이 안 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평소처럼 운행하다 보면 며칠 뒤 자기도 모르게 스르륵 사라질 테니, 내일 아침에 굳이 공업사에 다시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만약 일주일 가까이 운행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센서의 다른 부위가 원인일 수 있으니 공업사에 들러 진단기로 코드를 리셋하고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전히 켜져 있는 주황색 불빛을 바라보며 다시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내 차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체크 표시'가 제때 발동했다는 것, 그리고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그 작은 불빛을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았다는 것이 말입니다. 만약 이 경고등 시스템이 없었거나 제가 이를 무시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연료는 계속 증발했을 것이고 더 큰 고장이나 사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여기를 좀 봐달라"고 먼저 말을 건네주는 체크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참 고맙고 안심되는 일입니다.


이 생각은 자연스레 요즘 제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당연한 일상이 된 '손주'에게로 이어집니다. 하루 종일 애쓴 딸아이를 도우러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주를 돌보다 보면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것은 영락없는 아이만의 '주황색 경고등'입니다. 말 못 하는 아기가 세상에 보낼 수 있는 유일한 'CHECK' 신호인 셈입니다.


아이가 울 때, 아직 모든 게 서툰 딸이나 할머니인 저는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경고등을 보고 원인을 찾아 나섰듯, 아이가 울 때는 마음의 돋보기를 꺼내 세심하게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울음소리의 톤이 평소와 다른가?'

'배가 고파서 우는 알람인가, 아니면 기저귀가 축축하다는 센서가 작동한 걸까?'

'어디가 아파서 열이 나는 빨간색 경고등은 아닐까?'


가만히 아이의 신호를 체크하고 배를 만져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따뜻한 우유를 물리며 원인을 찾아 해결해 줄 때,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천사 같은 미소로 다시 '정상 작동' 모드로 돌아옵니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아이가 보내는 작은 체크 신호들을 세심하게 읽어내고 진단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입니다.


비단 자동차나 육아뿐이랴, 우리의 인생 전체에도 이런 체크 시스템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피로하다고 보내는 신호, 마음이 지쳤다고 보내는 무기력함, 인간관계에서 오는 삐걱거림….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인생의 계기판에 켜지는 주황색 불빛들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이 불빛들을 무시한 채 액셀러레이터를 계속 밟다 보면, 결국 인생이라는 자동차는 길 한복판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멈춰 서고 맙니다.


오늘 제 차의 주황색 체크등은 저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멈춰 서서 점검하라는 신호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아채고 원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말입니다.


며칠 지나면 제 계기판의 주황색 불빛도 이내 스스로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제 삶의 계기판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소중한 가족과 나의 일상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만큼은 꺼지지 않는 따스한 불빛으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습니다. 주유소 직원분들의 따스한 온기를 품고 도착한 집, 문을 열자 나를 반기는 딸아이와 손주의 미소 덕분에 오늘의 퇴근길 마무리가 한결 더 따뜻하고 아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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