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과 통계

by사주영웅

어떤 사람들은 명리가 통계와 같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의미하려고 했던 것은 명리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나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이라는, 사실상 명리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표현 속에는 통계라는 대단히 수학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의 체계에 대한 비유를 통해 명리가 주먹구구식의 기만적인 점술이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와 분석을 근거로한 나름 과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명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기특하지만, 통계에 비유하는 것은 오히려 명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원칙은 좀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할것 같다. 명리는 통계라는 어찌보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프레임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것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마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겨울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2월부터 세월이 흘러 12월이 되면 날씨가 춥고 비가 내리고 땅이 어는 것이 통계에 의한 것인가? 내년 2월에 눈이 내린다는 예측이 지난 수 백 년간의 통계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내년 2월이 겨울이며 눈이 내릴 것 이라는 추측은 통계적 자료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거대하고 유구한 자연의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한 개인의 운명에 대입하여 명을 추론하는 것은 분명 통계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물론 통계적인 자료의 분석이 가능해서 명리에 관한 빅데이터가 가능해진다면 그것으로 명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대단히 높겠지만 가장 근본원리가 되는 추명의 근간이 통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통계는 이미 서양에서도 그 조작가능성과 해석의 기만적인 측면 때문에 통계가 어떤 진리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되는 것은 불충분한 면이 많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명리를 통계와 관련짓는 것은 그 의도는 선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명리를 과학의 기만적인 놀음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많은 면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사물의 물리적인 진실을 따지는 것으로 인간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다. 기계의 활동을 예측할 때 얼만큼의 오류가 나타날 수 있는가는 통계적으로 계산하여 그 계산의 올바름으로 진실을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삶은 그런 통계적인 판단으로 재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 개개인의 삶은 그 삶 하나하나가 바로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의 명을 추론하는 일은 매번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바탕에서 이루어진다. 비슷한 사주팔자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비슷한 운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글자의 다름, 그것은 전체 운명의 다름과 같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사주영웅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영문학자.시인. 작가. 상담가. 사주영웅, 사주명리연구, 현대명리연구소(철학관)에서 사주상담합니다. 사주강의, 강연. 사주관련 에세이, 운명을 리드하라(출간예정).

25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6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3화영화 매트릭스와 명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