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지금은 자매가 되었지만, 당시는 형제였던 워쇼스키 두 사람이 매트릭스를 세상에 선보였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떤 거대한 구조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는 발상으로 시작해서,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매우 철학적인 영화였다. 20세기의 마지막이기도 했던 그 시기,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데이빗 핀쳐의 <더 게임>은 1997년,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가 1998년, 그리고 <매트릭스>와 같이 1999년에 개봉했다가, <매트릭스>의 기세에 제대로 사람들에게 어필조차 하지 못했던, 조세프 루스넥 감독의 <13층>과 같은 영화들은 모두 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의 힘과 원리에 관한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은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어떤 힘에 대한 매우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그것은 때로 첨단 디지털 기술이기도 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계획된 철저한 속임수이기도 하고, 또 엔터테인먼트와 결합된 자본주의의 허구적인 신화로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매트릭스>는 여러모로 명리학에서 생각하는 운명을 생각해 보게 한다. 명리학이 천간지지라는 22개의 코드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매트릭스에서는 디지털화된 코드가 매우 상징적인 비쥬얼로 사용된다. 그러한 디지털 코드는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에게 신화와 믿음, 행복과 불행, 지식과 망상을 전달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만약 어떤 게임의 코드를 짜는 어떤 설계자가 있다면, 그 설계자는 게임속 캐릭터의 외모나, 특성, 장점과 단점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모두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세계에 접속한채 태어나고 죽어간다. 결국, 매트릭스의 코드에 접근하게 된다면, 매트릭스에 종속된 인간의 마음과 생각도 역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러한 설정을 바탕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26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매트릭스는 철학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영화 전편에서 던지고 있는 한가지 질문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여러 가지로 변주될 수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보는 이 질문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
영화속에서 주인공 토마스 앤더슨(네오)는 처음 모피어스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운명을 믿나?”
“아니요. 나는 내 운명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게 싫어요”
네오는 영화의 초반, 철저한 자유의지의 신봉자로 등장한다. 그에게 운명의 배후에 있는 조직적인 체계나 힘은 기만과 허상일 뿐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영화속에 많은 상징과 의미를 숨겨 놓았다.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이름 역시 그렇다.
특히, 종교적, 기독교적 상징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는데, 토마스라는 이름은 성경적 맥락에서 “의심하는 도마”의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성경 속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도마는 보이는 것만을 믿는 인물, 감각적 현실에 집착하는 인물인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