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은 본래 오성학이라는 일종의 동양 천문학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오성학은 인도를 거쳐 당나라 시대의 중국에 전파된 서양의 점성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고 한다. 명리학의 몇몇 핵심적인 사상들은 서양의 점성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성(星)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쓰이는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말 그대로 명리학에서의 운은 특정한 별(星)들의 배치와 조합이 결정한다는 믿음체계를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2 운성(運星성)이라는 말이나, 십성(十星), 그리고 명리의 고법체계에서 사용되는 많은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성경에서도 예수의 탄생은 별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었고,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임박한 수를 안타까워 했으며, 초한지의 영웅들이 하나둘씩 중원에서 사라져갈 때마다 빠짐없이 별의 쇠락이 있었으니, 별자리와 인간은 운명이 가지고 있는 관계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단순한 판타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리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12지지와 12운성, 십성 그리고 실제 사주추명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형, 충, 파, 해, 삼합(영국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는 키메라가 세 가지의 계절과 달력을 상징하는 짐승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자, 염소, 뱀이라는 각 계절들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한데 뭉쳐놓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고...-위키백과)과 방합 등의 이치와 원리는 모두 천문학적인 계산을 근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밤하늘 별자리의 위치를 근거로 이루어진 원칙들이고 여기에는 매우 규칙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을 근거로 한 바탕이 있다 동양천문에서는 하늘을 크게 4구분으로 나누고 입춘 자정의 하늘을 보고 동쪽은 청룡7수, 북쪽은 현무7수, 서쪽은 백호7수, 남쪽은 주작 7수로 나누어 28수라고 불렀다 . 명리학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만민영의 삼명통회에서도 밤하늘에 드리워진 천체의 모습에서 28수의 별자리에 대한 상을 말한바 있다(삼명통회 99). 7이라는 숫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 7은 음양과 오행이 합한 수, 즉, 일, 월, 목, 화, 토, 금, 수를 합한 수 7과 일치하며 서양에서도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는 일곱가지 본원적인 힘을 암시하는” 이미지와 언급들이 다양한 문화전통에서 발견되고 있다. 다소 길지만 상소네티가 밝히고 있는 서양 문화권의 7의 비범한 의미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자.
“유대교도들은 칠지 촛대를 밝히며, ‘요한 계시록’의 ‘타오르는 일곱등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뜻하고’ 하나님의 횃불인 양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낸 일곱 영’을 상징하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으며, 또 이 양은 일곱 겹이나 봉인된, ‘겉장과 안장에 글이 쓰인’ 계시록을 펴볼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천사를 나타내는 일곱 개의 별을 오른손에 쥔 채 사도 요한 앞에 나타난다. . . 고대 스칸디나비아에서 ‘알파디르(Alfadir, 우주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오딘이 일곱 자매를 유혹했다고 자랑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 오딘이 물질의 일곱가지 양태를 마음대로 제어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의 중간에 있는 7의 힘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은 단연 무지개를 통해서다. 무지개는 천상의 운명을 타고난 영웅이 개선하며 건너는 다리이다. 무지개는 일곱 개의 중첩된 광선과 일곱 개의 고리 혹은 일곱 개의 동심원 바퀴를 연상하게 한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아서(Arthur)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아서의 이름도 7을 암시한다고 한다. 상소네티가 밝힌 바에 따르면 아서라는 이름은 원래 ‘곰’을 뜻하는 라틴어 arctus 와 근접해 있는데, 이것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별자리이면서(정북하늘에 위치) 일곱 개의 별로 구성된 큰곰자리와 작은곰 자리를 왕과 관련짓게”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7에 4를 곱한 28수로 나누었던 서양은 천문학적인 관찰을 근거로 점성술을 발달시켰는데, 동양과 서양의 고대 천문학은 서로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 그것은 서양의 천문학이 동양으로 유입되면서 일종의 영향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천문학에서 유래한 점성술은 점점 정교해지면서 나름대로의 예측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측은 일종의 수리를 기반으로 한다. 모든 수의 체계가 결국은 순환과 반복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순환과 반복의 리듬을 통해 앞일을 예측했던 것이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점성술 혹은 타로와 같은 점술이 발달했던 것은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의 파괴적인 위력을 그나마 미리 예측하여 그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통설이 있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에겐 미래를 아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을 것이다.
점성술은 이후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멀리는 동양으로 점성술이 전파되었고 또 서양문화권 안에서도 신비주의 및 오컬트를 숭배주의와 같은 형태로 이어졌다. 이것은 서양과 동양의 고대 점술이 서로 비슷한 천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시사한다. 역사적으로 서양의 천문학은 동양천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양의 점성술은 천문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점성술적 체계 역시 서양역법과 함께 동양으로 전해졌다고 보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점성술의 슬롯적 지위는 동서양이 서로 달랐다. 서양의 점성술은 개인의 점성술로서 개개인의 운명을 점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반면 동양의 점성술은 국가가 주관하였다. 일단 개인들은 천문을 관측하는데 기술적,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밤하늘의 천문을 관측하는 것은 국가가 주관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동양에서는 점성술 역시, 국가의 운명, 국가의 중대사를 점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동양의 점성술을 “군국점성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점성술적인 체계는 특정한 시간대에 밤하늘의 천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현대 점성술에서도 여전히 적용되는 원리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천체의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 그것은 명리학에서 사용하는 육십갑자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다시 말해, 육십갑자의 글자들이 서로 맺는 관계는 마치 점성술에서 별과 별 사이에 이루어지는 기하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별과 별 사이의 기하학적 위치가 60도, 90도, 120도, 180도 등으로 변하면서 좋은 일과 나쁜일이 구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명리학에서 형, 충, 회, 합 등의 상징적인 관계로 반영되었다.
아일랜드의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W. B. 예이츠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모더니즘의 기수 에즈라 파운드는 노벨상을 수상했던 T. S. 엘리엇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시인이지만 그도 한때 예이츠의 비서로 일하면서 예이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만큼 예이츠는 현대시의 계보에서 그야말로 원초적 아버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아일랜드의 역사는 국토를 강탈당했던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중첩되면서 한국의 많은 영문학자들은 아일랜드 문학에 유독 강한 친연성을 보여왔다. 덕분에 일반 독자들사이에서도 아일랜드의 문학과 문화는 한국적인 정서와 비슷할거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바탕에서 한국은 아일랜드 문학과의 정서적 친근성을 강조하면서 예이츠를 비롯한 아일랜드 작가들, 예를 들면,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 피그말리온의 작가 죠지 버나드 쇼, 최근의 노벨상 수장시인인 세이머스 히니의 작품을 비교적 지속적으로 번역하고 읽어왔다. 하지만 아일랜드 문학이 한국 영문학계에서 많이 읽히고 가르쳐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 영문학자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영문학 수용 초기에 한국은 자생적으로 아일랜드 문학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식민시대부터 예이츠를 비롯 아일랜드 문학에 많은 공감을 느꼈던 것은 일본 영문학자들이었다. 자신들이 특히 애착을 가졌던 작가와 작품을 강조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결과 일본의 영문학자 밑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던 한국 영문학 1세대들에게 이러한 영향은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결국 예이츠와 한국의 문학적 공감대의 형성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이츠는 굳이 일본 영문학자들의 영향이 아니었어도 피해갈 수 없는 영문학의 역사 그 자체였으니, 한국에서 예이츠의 문학을 수용하고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정해진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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