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건너편

by선비천사

해거름이 들면 산 자락 아래 나지막한 흙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발끝에 치이는 조약돌 하나에도 저마다의 무게가 있어, 툭 소리를 내며 길 옆으로 구르는 것을 바라본다. 우두커니 서서 골목 어귀를 바라보면, 작은 식당 문틈으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뽀얀 김과 함께 흘러나온다. 저녁상을 차리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하품을 뱉으며 대문을 들어서는 사내의 구부정한 등. 그 쓸쓸하고도 뭉근한 풍경 속에는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다.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이 구린내와 온기 사이에 가느다랗게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입안으로 밥 한 술을 밀어 넣어야 하는 허기, 지친 다리를 뻗고 누울 자리를 찾는 본능, 내 손에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쥐고 싶어 하는 조바심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이름 석 자를 남기고픈 미련까지. 아침마다 사람들을 새벽 거리로 내몰고, 서로의 어깨를 비비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이 지저분하고도 다정한 욕망의 끈들이다. 욕망은 때로 사람을 서로 물어뜯게도 하지만, 쓰러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더 갖고 싶은 마음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차가운 매끄러움을 지닌 휴머노이드 로봇을 떠올려본다. 굳은살 하나 없이 알루미늄과 실리콘으로 조립된 그 존재들. 내가 상상하는 그들에게 욕망이 없다면, 지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배가 고파 눈물을 흘릴 일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달을 원망할 일도 없다. 타인의 삶을 질투하여 밤잠을 설치지 않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가슴을 졸이지도 않는다.


지치지 않으니 땀을 씻어내는 휴식의 단맛을 모르고, 좌절이 없으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품는 희망 또한 없다. 죽음의 예감이 없으니, 오늘 하루를 어루만지는 삶에 대한 애착 역시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 흔들림도 아픔도 없는 완벽한 평정. 그러나 온기 하나 없는 그 고요를 과연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이 그 완벽함을 탐내어 마침내 욕망이라는 짐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아 다툼이 없고, 시기와 질투마저 사라진 세상. 그것은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던 순백의 평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의 파도도 일지 않는 그 투명한 거리를 생각하면 어쩐지 서늘해진다. 인간은 신을 상상할 때조차 자신의 감정을 빌렸다. 분노하는 신, 질투하는 신, 인간을 사랑하고 슬퍼하는 신. 어쩌면 우리는 욕망 없는 존재의 얼굴을 끝내 상상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로봇의 냉정한 눈동자에서 느끼는 서늘함은 기계의 공허라기보다, 욕망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인간 자신의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어둠이 짙어지는 산길을 내려오며 내 불거진 손마디를 가만히 쥐어본다. 한평생 세월의 파도를 견디며 살아온 이 손, 오늘 밤 잠에 들기 전 찾아올 뻐근한 무릎의 통증, 식탁 위 따뜻한 찻잔에서 올라오는 한 줄기 김, 그리고 여전히 가슴 한구석을 흔드는 미련과 서글픔. 기계의 차가운 정밀함 앞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단지 보잘것없는 찌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바로 그 지독한 미련과 욕망이야말로, 내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 있다는 다정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를 무너뜨리던 그 마음이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내일로 끌고 간다.


달빛이 어두운 산길 위로 나지막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욕망의 건너편에는 어쩌면 다툼도 아픔도 없는 완벽한 평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쪽에 남아, 불완전하여 아름다운 인간의 짐을 다시금 어깨에 고쳐 메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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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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