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을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by선비천사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길은, 끝내 가지 못한 길이다. 그 길 끝에는 늘 단풍 든 숲 속의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던 로버트 프로스트가 있었다. 그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수없이 읊어주었던 시구였건만, 분필 가루를 털어내고 칠판 뒤편의 일상으로 걸어 들어온 지금에야 그 행간의 무게가 온전히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아무리 서성여도 삶은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눈앞의 갈래길 중 하나를 택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가장 가파른 갈래길은 스무 살의 문턱에 있었다. 나는 문학을 품고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다. 활자 사이를 헤매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했다. 원서 접수를 며칠 앞둔 겨울날, 교무실 서랍장 앞에서 나를 아끼시던 은사님이 내밀던 사범대학 슬롯교육과 원서 한 장이 눈에 선하다.


“문학은 평생 품고 갈 수 있지만, 삶의 주춧돌을 먼저 세우는 것도 길이란다.”


그 말은 당시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으로만 들렸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그것이 내 삶을 지켜준 따뜻한 축복이었다는 것을. 열아홉의 나는 끝내 그 원서를 받아 들었다.


그날의 선택은 도미노처럼 다음 풍경들을 결정지었다. 교직자가 되어 32년 동안 칠판 앞에 섰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청춘을 다 보냈다. 마침내 마지막 종이 울리던 퇴임 날,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는 하얀 분필 냄새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텅 빈 칠판을 가만히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불을 끄는데,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음성이 올라왔다. ‘그래, 이 길도 나쁘지 않았구나.’


인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길은 또 다른 만남을 데리고 왔다. 사대를 나와 첫 발령을 받은 학교의 교무실, 탕비실에서 따뜻한 차를 건네며 싹싹하게 굴던 내게 한 선배 교사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방 선생, 참 참한 사람이 있는데 만나볼 건가?” 그 선배의 주선으로 처음 마주 앉았던 사람이 내 아내였다.


스무 살에 다른 학과를 택해 다른 궤적을 그렸더라면, 그 선배 교사를 만날 일도, 아내가 내 인생에 등장할 일도 없었을 터다. 내 거친 성정을 묵묵히 받아주던 아내의 손길 대신, 다른 온기를 나누며 전혀 다른 결의 슬픔과 기쁨을 조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원서는 다시 쓸 수 있어도 스무 살은 다시 오지 않는다.


가끔은 하늘 어딘가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 창문 너머로 은사님의 권유를 거절하고 국문과 원서를 썼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한 번쯤은 그 유리창을 두드리며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토로 호기스럽게 걸어가는 또 다른 나를 응원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시계는 되감아도 삶은 되감기지 않기에 깊어지는 미련일 것이다.


어느 저녁,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찌개를 먹다가 문득 웃음이 터졌다. “그때 내가 선생님 말씀 안 듣고 국문과 갔으면 당신 못 만났겠네.” 아내는 “당신 성격 받아줄 사람 나밖에 없으니 다 운명”이라며 싱겁게 웃었다.


현관문을 열면 아내의 안온한 “왔어요?”라는 한마디가 들린다. 저녁노을을 보다 보면 가끔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르지만, 그 한마디면 오늘도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노트북을 연다. 스무 살에 미뤄 두었던 문장을 다시 쓰기 위해서. 결국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없었다. 조금 돌아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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