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세차게 들이치는 한낮의 바람을 따라 뽀얀 먼지들이 방 안을 유영한다. 서재 구석에 겹겹이 쌓인 낡은 노트들과 빛바랜 바카라들이 그 바람에 마른기침을 해댄다. 앞만 보며 달릴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물들이, 멈춰 선 일상 속에서는 베란다 한 편의 그림자처럼 눅눅하게 나이를 먹어갈 뿐이었다. 내 생각의 부스러기들 또한 버리지 못한 채 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비움과 초연함을 고결한 미덕이라 말하며 나를 다그쳤다. 나이가 들수록 영혼마저 가벼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 깨끗하게 비워내자. 그 순간부터 비움은 삶의 태도가 아니라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결심한 날부터 내 삶을 향한 결벽증적인 숙청이 시작되었다.
젊은 날 잠을 설치며 읽던 소설바카라들을 고물상 트럭에 던져 넣었고, 철마다 챙겨 입던 오래된 옷들을 의류 수거함으로 밀어 넣었다. 비워진 바카라장을 보며 묘한 승리감에 도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방에서 벌어졌다.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은 조바심이나 타인을 향한 옹졸한 미움을 악착같이 덜어내고 싶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그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말자’며 다짐했다. 그러나 비우겠다고 기를 쓸수록 내 하루는 잔뜩 찌푸린 하늘처럼 무거워졌다. 길을 걷다 누군가의 번창한 소식을 들을 때, 아주 잠깐 가슴이 아려오기라도 하면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독하게 몰아세웠다.
깊은 밤, 거울 앞에 앉아 핏발 선 눈을 들여다보던 날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비워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욕심을 완벽하게 버린 고결하고 초연한 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오만한 욕심을 새로이 품고 있었던 것이다. 무소유라는 이름의 소유욕이었고, 단 하나의 인간적인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지독한 완벽주의였다. 방향만 안쪽으로 바뀌었을 뿐, 내 안의 유치한 지배욕은 여전히 펄펄 살아 숨 쉬며 나를 주무르고 있었다. 억지로 물을 짜내려 걸레를 부서져라 쥐어 틀듯, 내 가슴을 가차 없이 비틀어 짜고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서랍 깊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굴러다니던 몽당연필 몇 자루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쓰다 남은 것인지, 칼로 비뚤비뚤하게 깎은 연필심과 때 묻은 지우개가 매달린 몽당연필이었다. 그것들을 쓰레기통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잠자코 멈춰 섰다. 거칠고 서투르던 시절의 체온이 연필의 닳아진 표면을 타고 손바닥으로 배어 나왔다. 나는 왜 이 작은 흔적마저 욕심이라 이름 붙여 버리려 했을까. 무언가를 더 쥐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의 나약함을 감추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마음은,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기에 뿜어내는 당연한 체온이었다.
이제는 마음의 욕심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내쫓으려 하지 않는다. 또다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어 안달이 나거나 옹졸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면, 그저 서랍 속 몽당연필을 보듯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쫓아내려 가시를 세우지도, 부끄러워 숨기지도 않은 채 그 투박하고 때 묻은 모양새를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해 준다. 완벽한 진공 상태로 비워진 방은 박물관처럼 박제될 뿐 생명이 깃들 수 없다. 인간의 냄새가 나는 삶이란 적당한 온기와 손때 묻은 어지러움, 그리고 온갖 서툰 감정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욕심을 완벽히 버리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창틀에 가만히 내려앉는 먼지들이 전처럼 서럽지 않다. 먼지는 쓸어내도 다시 내려앉는다. 내 마음도, 아마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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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