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에 기대어 사고합니다. 이것은 A이며 저것은 B라고 말하기 위해선 각자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준은 보통 삶의 경험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지지만 집단에 내재된 무의식과 같이 출생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기준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기준들이 모이면 하나의 견고한 세계관이 됩니다. 개개인이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같은 시공간 속에서 사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우주 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관'이라는 자를 통해 삶을 측량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만 얼마 전부터 제 세계관이 지나치게 난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이치가 궁금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어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가만 생각해 보면 스스로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논점이 흐릿해 굳이 어디 가 부딪치지 않더라도 제 안에서 다른 생각들을 만나 어그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이 정도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지껄이는 수준이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래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떤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자의 눈금이 오밀조밀하고 선명할수록 측량이 수월한 것처럼 정돈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삶을 더 명료하게 볼 수 있을 터였습니다.
제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물줄기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됨'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저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자유의지의 소멸을 의미하며 살아진다는 건 전체에 속함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키보드 앞에 앉은 저 역시 전체의 일렁임일 뿐입니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아홉 편의 글을 더 쓰겠지만 저는 그래도 모를 겁니다. 알고 싶어 오랜 시간 궁구했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물음은 그만두고 삶을 경험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조차 전체의 일렁임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여기에 좁쌀만 한 의지를 덧대고 싶습니다만 역시나 모르겠습니다. 이마저도 전체의 일렁임일지는. 그래도 저는 이 의지가 좋습니다. 이 의지는 어두컴컴한 제 삶을 비추는 등불이며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밥알이니 말입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시리즈는 불친절할 겁니다. 때론 쓴 사람만 알 수 있는 말들로 빼곡할 겁니다. 제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것들로 누군가를 이해시킬 순 없습니다. 이 시리즈는 제 세계관 정리의 한 가지 방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공명한다면 함께 해주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