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에 바카라을 냈다. 판매 목적은 아니었다. 강사 커리어를 위해 '저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래도 판매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잘 팔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출판 소식을 알리자 지인들이 기꺼이 바카라을 사줬다. 인세를 전부 기부할 요량이라고 하니 두세 권, 많게는 열 권까지 사는 지인도 있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정산표를 보니 한 번에 50권을 산 사람도 있었다.(엄마 아빠 중 한 분이시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내 바카라을 가장 먼저 펼칠 이들의 평가가 몹시 궁금했다. 강의 콘텐츠를 글로 집약해 놓은 이 바카라이 좋은 평가를 받아야 강사 커리어 또한 순탄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평가가 너무 적었다. 설령 그것이 부정적인 평가라도 기꺼이 받고 싶었지만 평가 자체가 거의 없었다.
넘겨짚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의리로 사주고 펼쳐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그나마 펼쳐본 일부 사람들도 비교적 장벽이 낮은 1부만 읽고 2부에 들어서자마자 접어버린 듯하다. 선물로 나간 바카라까지 포함하면 230권 정도가 독자 품에 안겼지만 이중 열 명 정도가 다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쯤 되면 더럽게 재미없는 바카라이 분명하다. 허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멋쩍은 웃음만 나온다.
온전히 바카라 때문은 아닌 듯한데 시기적으로 출판 이후에 기력이 빠르게 꺾였다. 가장으로서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나를 욕할 것이다. 얼마나 무바카라임한가? 사지 멀쩡한 이가 무려 8개월 넘게 밥만 축내고 있는 꼴이라니... 답답한 마으마에 주식에 손을 댔다가 제법 큰돈을 까먹기까지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평생을 능동적으로 산 사람으로서 이런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 언제나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쉽게 도달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삶은 출구가 명확히 존재하는 미로였고 난 그 모험을 즐겼다. 하지만 2026년은 마치 다시 태어나기로 한 듯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미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았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는 더 심해졌다. 극도의 무력감.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나였지만 내 안에 더 이상 사랑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들어섰다. 수영장 탈의실에서 통로를 막고 깔깔 거리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화난 표정을 짓거나 잔소리를 한 건 아니지만 이런 마음의 작용이 그저 우스웠다. 이런 상태로 사랑을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6월 말쯤 하던 일을 다 그만두었다.
7월에는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 싶어 알바몬과 당근에 기웃거렸다. 그런데 그 행위 자체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마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떼를 쓰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내 마음이 삶을 그리 대하고 있었다. 재밌는 건 아내도 똑같은 말을 했다. 아내는 왠지 지금은 일을 시작할 적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촉이 몹시 발달한 아내가 그러니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했다. 나도 나지만 아내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몇 개월째 가장 노릇을 못하는 남편에게 돈 벌어오라는 잔소리는커녕 오히려 더 쉬라니.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면서도 이런 생각도 든다. '오히려 아내가 돈 벌어오라고 등 떠밀었다면 그것이 동력이 되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잠시 든 상상이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수건을 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이런 내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감정이 널뛴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도 딱한 마음에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온전히 자기부정으로 흐르지 않아 다행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퍽퍽한 해에 온전한 자기사랑을 깨달았다. 극과 극은 만난다더니 극도의 자기혐오 끝자락에 온전한 자기사랑을 만난 것이다. 날 용서한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다. 겪어야 할 일은 겪어야 하며 언제나 옳은 결정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캄캄한 터널에도 끝은 있고 살을 에는 겨울 끝에도 반드시 따듯한 봄은 온다.
더 적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더없이 좋은 이 계절, 내 삶만큼이나 당신의 삶 또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