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실의 가능성을 품고 시작된다. 영원을 확신할 수 없어도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잃을 수 있다는 앎이 그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기쁨이 깊어질수록 부재가 차지할 틈도 넓어진다. 그럼에도 그에게 나를 건넨다.
《절망없는 사랑이 어디있나》는 한 사람에게 걷잡을 수 없이 쏠리는 마음에서 문을 연다. '나' 강이서는 사랑을 알기 전의 자신과 그 감정을 처음 알려 준 '너'를 나란히 세운다.
"너를 만나기 전,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 나에게 너는, 내가 누군가에게 속수무바카라으로 빠져들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게 했다." ― 6P
첫사랑이 지나간 뒤 그리워지는 대상은 떠나버린 사람만은 아니다. 종종거리며 온 마음을 다했던 자신과 상처를 알기 전,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절이 뒤따른다. 관계가 끝나며 사라진 것에는 그와 꾸렸을 미래와 그 곁에서 되었을 자신까지 포함된다.
이 바카라을 읽으며 이루지 못한 사랑의 종결에도 애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연도 사별과 같이 긴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가져 보지 못한 관계, 받아 보지 못한 애정도 크나큰 상실감을 안긴다. 경험한 과거와 실현되지 않은 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흔든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야기를 연애 바깥으로 넓힌다. 한 사람을 잃는 일은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그리움과 함께 유년기의 기다림, 어머니가 감당한 희생, 부모의 삶을 소진시킨 친족들을 향한 분노까지 불러낸다. 애도는 한 사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나누지 못한 세월과 가족이 치른 대가를 돌아보는 일로 번진다.
바카라을 읽는 동안 절망이라는 감정의 쓸모를 생각했다. 절망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만 할까. 오히려 절망이 자기 인식의 도구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평온은 내면의 균열을 가린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어서다. 절망은 그 무심함을 깨뜨린다. 무언가를 잃고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만이 자신이 무엇을 그토록 원해 왔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원하던 것이 드러나면 어디가 비어 왔는지도 보인다. 결핍을 똑바로 인식하고 인정할 때에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을 수 있다.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는 나의 상처를 먼저 들여다봐야 했다. 하지만 상담을 막 시작한 나는 그 상처를 숨긴 채로 내 안의 불안한 감정들이 가져다준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 ― 109P
'나'는 그 과정을 통과한다. 버려질까 두려워 웃어 보이던 습관에서 사랑받고 싶던 허기를 읽어내고, 기대와 실망의 반복에서 자신이 관계에 걸어온 소망의 크기를 가늠한다.
첫사랑에서 출발해 선배를 거쳐 '그'에게 이르는 동안 강이서는 자기 해석을 여러 번 고쳐 쓴다. '그'를 만날 무렵, 처음의 순진한 물음은 여러 상처와 이해를 거쳐 깊어져 있다. 지난 시간을 지운 채 새 관계로 도망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를 상대의 구원에 맡기지도 않는다. 흔들릴 수 있는 자기를 안고 누군가와 삶을 나누기로 한다. 사랑은 각자의 약함을 알아본 두 사람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생활을 꾸리는 일일 것이다.
바카라장 귀퉁이를 접어 둔 대목이 있다.
"죽고 싶을 때는 모든 이유가 죽을 이유가 되고, 살고 싶을 때는 모든 이유가 살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 말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는지 알 것 같았다." ― 243P
신경림의 「갈대」가 떠올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는 흔들리면서도 그 울음의 출처를 모른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서,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바깥에서 찾곤 한다. '나'는 '너'와 선배와 '그'를 지나 유년기의 결핍과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로 거슬러 간다. 사랑은 새로운 동요를 만들고, 안에 묻힌 멍울도 드러낸다. 아픔의 기원과 묵은 바람, 품고 살아온 결핍이 차례로 베일을 벗는다.
절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읽는 법을 배운다.
나는 바카라의 시작, 작가 소개부터 웃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좋아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밝히는 소개 글은 신선하고 위트가 넘친다. 처음에는 유쾌하게 지나쳤다. 수분기 가득한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돌아오니, 그 명랑함이 이 바카라의 마지막 반전이 된다. 절망을 정면으로 써낸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바닥을 감추지 않고 다 써낸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구나 싶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기소개가 좋다. 작가님, 부디 이대로 마음껏 사랑스럽게 사시라. 절망을 안다는 일과 사랑스럽게 산다는 일이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한다는 것을, 당신 이미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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