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요즘 일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었습니다. 휴직을 하거나 이직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던 차에, ‘삶이 힘들 때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 보라’는 스승님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길로 연차를 내고 잠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제가 온라인 게임 생활이 힘든 건 회사가 아니라 바로 저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료의 크고 작은 요청이나 상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저의 인정욕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는 것이 두렵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삶이 너무 힘듭니다. 스승님, 인정욕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야 이놈아, 질문이 되었다. 삶을 잘 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다. 삶의 조건과 삶의 가능성을 구분하는 일이다. 삶의 조건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문제고, 삶의 가능성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문제다. 불행한 이들은 바꿀 수 없는 삶의 조건에 집착하느라, 정작 바꿀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인정욕구는 삶의 조건이냐? 가능성이냐?
가능성 아닐까요? 인정욕구는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거잖아요.
너는 아직 멀었다. 헛된 생각해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구나. 유명하다는 것과 삶의 진실을 아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유명한 연예인 혹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그가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삶의 진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이들만이 알게 된다. 인정욕구는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삶의 조건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인정받으며, 필연적으로 인정하는 존재이다. … 인간 자체는 인정 행위로서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이 바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극복한다. 즉 인간은 인정 행위다. 『인정투쟁』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악셀 호네트
‘나’라는 존재는 “인정 행위 속에서 존재”한다. 쉽게 말해,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아야지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인정 행위” 그 자체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거라. 갓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인정’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 다른 종과 다르게 인간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부모(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도움은 부모의 ‘인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이가 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선생과 친구의 ‘인정’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삶의 진실은 성인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성인이 된다고 해서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연인이건 배우자이건 온라인 게임 상사이건 사장이건 멘토이건 유의미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 자체는 인정 행위로서 운동”이며, 인간은 그 운동으로 자연 상태를 극복해 나간다. 인간은 누군가(부모‧친구‧연인…)로부터 ‘인정’(관심‧칭찬‧사랑)받고 또 누군가(부모‧친구‧연인…)를 ‘인정’(관심‧칭찬‧사랑)하는 운동을 끊임없이 한다. 그 운동을 통해 인간의 자연 상태, 즉 실오라기 하나 없이 온통 낯선 것뿐인 세상으로 홀로 던져진 상태(공포‧당황‧주눅듦‧의존성…)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지 않더냐.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누군가를 ‘인정’하는 행위를 통해 자연 상태를 극복해 나가며 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인정’이 삶의 조건이라면, 저는 온라인 게임에서 인정받기 위해 계속 지금처럼 살아야만 하는 건가요? 그건 너무 의존적인 삶 아닌가요? 스승님, 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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