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웰다잉하겠습니다>
산다는 것에 대해: 생존 vs. 존재
사람은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분주한 동물이다.
(살아 있다면) 한 시도 쉬지 않고 숨 쉬고 있고, 심장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폐는 끊임없이 공기를 들이쉬고 내뱉는데도 늘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 든다.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이 기묘한 역설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나는 묻는다.
내 결론은 이렇다.
이것은 '생존(Survival)'과 '존재(Existence)'의 간극에서 오는 트러블이다. '생존'은 생물학적 영역이다. 심장이 뛰고, 세포가 분열하며, 유기체로서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상태다. 반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실존적인 선언이다. '나는 왜 사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성립되는 일종의 자각(自覺)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는 '생물학적 영역'에 가깝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해야 가장 꼭대기인 자아실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 이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지금의 시대는 모자람이 없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살아있다는, 그러니까 가슴 뛰는 순간을 확신하기 어렵고 허무와 뭔지 모를 뒤처짐의 불안에 휩싸여 살고 있다. 살아 있는 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급습하기도 한다. 생존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해서 온전한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금식을 하거나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욕구 단계를 역행하거나 붕괴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생존'이 아닌 '존재'를 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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