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웰다잉하겠습니다>
목적지를 찾느라 잃어버린
'현재 좌표'
한 커플이 있다.
어느 동네 언덕에서 이제 막 만났다.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오늘 뭐 할지 정해왔어?"
성격이 MBTI의 극 J인 듯하다.
반면, 남자친구는 성격이 극 P인 듯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룩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아 앉힌다. 뭐 할지 정하자고 한다. SNS를 연다. 자신이 있는 주위 유명한 곳을 찾는다. 아름다운 노을 사진이 뜬다.
"나 여기 정말 가보고 싶었어. 여기 가자, 노을 보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아!"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아채며 일어선다.
그때, 남자가 여자를 잠시 진정시키고는 하늘을 보라고 말한다.
"어, 이 사진, 여기서 찍은 것 같은데... 저기 노을 볼래..."
'갈 곳 찾느라 바쁘기만 했지, 여기가 어딘지는 정작 몰랐다'란 여자의 내레이션으로 쇼츠는 끝난다.
짧은 영상이지만 긴 생각을 하게 된 콘텐츠였다.
삶은 보이지 않는 손에 등 떠밀려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다 보면 잊고 사는 것이 많아진다. 나아가고 싶지 않을 때도 움직여야 하는 삶은 그렇게 고달프다.
자궁에서 빛을 보고 세상에 나온 뒤, 우리는 목표의 노예가 된다.
좋은 학교, 좋은 온라인 게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시선은 늘 저 멀리를 본다. 운이 좋아 목표를 이루고 나면, 마음엔 허무함이 가득하고 그 허무함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목표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목적도 모른 채,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또는 슬롯가 요구하니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나는 누구일까'란 질문과도 맞먹는다. 그럼에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고뇌해야 하고, 그럼에도 물어야 한다.
분명한 것 하나는 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어느 좌표를 찍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어떠한 맥락 안에 있는가를 떠올려보면 답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아니,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게 왜 그리 중요한 걸까?
내비게이션을 떠올려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늘 목적지 설정을 한다. 내비게이션의 본질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찾아가는 것.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 그런데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다.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내비게이션엔 GPS가 있다. 'Global Positioning System'이라 불리는 이것은 위성 신호를 받아 지구상 위치와 시간을 알려준다. GPS가 없다면 현재 위치를 알 수 없게 되고, 현재 위치를 알 수 없다면 목적지에 이르는 루트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나의 현재 위치인 것이다. 목적지를 다급하게 찾기 전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그 순서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할 때다.
잘 살고, 잘 죽기 위한
현 위치 파악
심리학자 셸던(Sheldon)과 카서(Kasser)의 연구에 따르면, 죽음의 유한성을 진지하게 인식한 집단은 물질적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외재적 목표보다 관계, 성장, 자아실현 같은 내재적 가치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의 후속 연구들 역시 유한성을 직면할 때 비로소 일상의 무의식적 질주를 멈추고 '지금 나의 진짜 모습'을 점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목적지만 보느라 주변 풍경과 나의 발걸음을 놓치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바로 유한성의 자각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완화의료 분야의 고전인 브로니 웨어(Bronnie Ware)의 저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을 보면 임종을 앞둔 이들이 남긴 가장 큰 후회는 "내가 원하는 삶 대신 남들이 기대하는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평생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렸지만, 막상 종착역에 닿아서야 자신이 원치 않는 곳에 서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두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뛴 결과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저 멀리 앞에 두고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이미 지나간 시간 역시 삶과 죽음의 사이에 속해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죽음은 먼 미래에 불쑥 맞이하는 결승선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매일 조금씩 삶과 중첩되는 피할 수 없는 과정.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내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의 한가운데 서 있는 '지금'을 온전히 체감하는 일이자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우리는 발밑의 땅을 생각하지 못한다.
가리킨 그곳이 정말 내가 가야 할 곳인지, 내가 원하는 곳인지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죽음을 염두하는 건 삶을 비관하는 행위가 아니다.
내비게이션의 깜빡이는 GPS 점처럼, '나는 여기에 살아 있다'란 신호를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여정 속에서, 내 위치를 정확히 인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정말로 원하는 목적지로 정확하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가 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