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짧은 게 아니다.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스테르담 웰다잉하겠습니다>

by스테르담
기괴한 시간의 속성


시간이란 속성은 참으로 기괴하다.

기괴함의 원인은 '상대성'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려면 어마무시한 과학적 탐구와 분석 그리고 계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성이론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원작자인 아인슈타인은 "뜨거운 난로 위에 1분간 손을 올리면 1시간처럼 느껴지지만, 매력적인 이성과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은 1분처럼 지나간다. 이것이 상대성이다." ("When you sit with a nice girl for two hours you think it's only a minute, but when you sit on a hot stove for a minute you think it's two hours. That's relativity.")라고 말했다.


시간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보면 좋은 개념이 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전자는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정량적·물리적·연속적인 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며,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 소멸하는 양(Quantity)의 시간'을 말한다. 후자는 '의미가 부여되고 결단이 이루어지는 정성적·주관적 시간. 기회의 순간이자 능동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질(Quality)의 시간'이다.


우리가 좀 더
힘주어야 하는 시간


그렇다면 그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는 늘 말한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 안에 있는 양자 모두라고. 다만, 정도와 수준 그리고 때와 기준이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꼭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카이로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그 이유는 마케도니아의 시인 포시디포스가 남긴 에피그램(풍자)에 있으니,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나를 만났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내 이름은 '기회(카이로스)'다."


모든 게 풍요롭고, 마시고 경험하고 즐길 게 가득 찬 세상이다.

우리는 대개 크로노스적 시간(물리적 시간)만 멍하니 바라보며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다가, 정작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카이로스적 순간(기회의 시간)을 모조리 놓치고 있다. 결단하고자 하나, 그걸 방해하는 수천, 수만 가지가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순간이라도 집중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칫 잘못하다간 짧은 동영상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만든 대작의 러닝타임보다 더 오래 보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러한 경험은 다들 있지 않은가?)


삶이 짧은 게 아니라,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온라인 게임인이다.

동시에 작가다. 온라인 게임인이란 본업이 우선이다. 그 이후의 시간에 글을 쓴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바쁘고, 그렇게 출장이 많은데 글 쓸 시간이 있냐고. 크로노스적인 질문이다. 카이로스적으로 대답해 보겠다. 출근길에 명상을 하고, 퇴근길에 하루 동안의 일을 복기하며 글 제목을 뽑는다. 집에 도착하기 전철로 두 정거장 정도 전에 내려, 걸으며 사색하며 머릿속으로 글을 쓰는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을 하고 메모를 병행한다. 온라인 게임인이 자유로워지는 주말에, 나는 이것들을 탈탈 쏟아내 글쓰기에 몰두한다.


이러한 나도, 아무것도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큰 명절 앞뒤로 연차를 붙여 장장 10여 일을 쉴 때다. 크로노스적으로 착각한다. 나는 시간이 많다고. 카이로스적인 결심을 하루, 이틀 뒤로 미룬다. 그러다 보면 글 한 편 쓰지 못한 채, 연휴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꿈에 나올까 두려운 상황을 현실로 맞이하게 된다. 심리학 이론에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s Law)'이란 게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배정된 시간만큼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계획오류(Planning Fallacy)'란 이론도 있다. 미래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자신의 실행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편향이다. '내일의 나'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우리네 모습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답이 보인다.

자꾸 뒤로 미루고, 게을러지고, 생각만 많고 움직이지 않는 내가 깨달아야 할 건.


삶이 짧은 게 아니라,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손은 지금 난로 위에 있는지 모른다.

온갖 자극적인 것들과,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쇼핑과 갖가지 중독들이 우리 손의 타들어감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얹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다리를 꼬으고 남의 삶을 엿보거나 짧은 동영상으로 긴 하루를 채우는 모습에서 우리는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쉽다. 뜨거움을 인지하고, 난로에서 손을 떼어 정말로 해야 하는 것들을 다짐하고 실천하면 된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크로노스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크로노스를 의식적인 카이로스로 전환하는 '밀도의 문제'다. 언제,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따라 카이로스는 즉시 발효되고, 그걸 실천으로 옮길 때 크로노스의 양은 신기하리만치 늘어난다.


크로노스의 양이 늘어난다면?

늘어난 만큼 카이로스적인 다짐을 하나라도 더 실천하게 된다면?


삶은 어쩌면, 더 이상 짧은 게 아니라 충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느 훗날 눈을 감을 때, 정말 알차고 밀도 있게 잘 즐기며 살았노라고.

그렇게 잘 떠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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