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웰다잉하겠습니다>
멕시코에서 다섯 해를 보냈다.
해외 주재원으로서의 시간이었다. 나는 대개 부임한 나라의 문화를 파고든다. 그래야 주어진 사업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알아야 사람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라가 가장 떠들썩할 때에 동참하는 것이다.
멕시코 부임 후 첫 해 가을.
나는 멕시코의 들썩임을 느꼈다. 도시는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거리마다 '셈파수칠(Cempasúchil)'이라 불리는 노란 마리골드 꽃길이 길게 늘어섰다. 빵집에서는 '빤 데 무에르또 (Pan de Muerto, 죽음의 빵)'의 고소한 냄새가 새어 나왔고, 영화 <코코>에서나 보던 해골 얼굴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심지어는 사무실에도 해골들이 가득했다. 동료들은 '라 까뜨리나 (La Catrina, 여성해골)', '엘 까뜨리노 (El Catrino, 남성해골)'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아 엑셀 작성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기간.
거리는 해골과 음악과 술이 가득했다. 집집 마다도 그러했다. '오프렌다 (Ofrenda, 죽은 자를 위한 제단)'가 곳곳에 설치되고, 그 위엔 세상을 떠난 이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과 데낄라가 놓여 있었다. 우리로 치면 제사상일 텐데, 그곳엔 피자도 있었고 달디 단 과자들도 있었다. 11월 1일은 어린 영혼을, 2일은 어른 영혼을 맞이하는 날이라며, 그들은 죽은 이가 마리골드 꽃향기를 따라 일 년에 단 한 번 집으로 돌아온다 말했다.
멕시코가 바라보는 죽음은 이렇다.
아무리 부유하고 화려하게 치장해도 결국 인간은 모두 해골(죽음)이 된다라는 사실과,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기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즐겁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고대 아즈텍 문명의 죽음관과 스페인 가톨릭 문화가 결합하여 탄생한 결과다. 아즈텍인들에게 죽음은 삶의 완전한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죽음은 슬퍼할 절망이 아닌, 재회를 반가워할 기쁨의 구실이 된 것이다.
검은 옷과 흰 국화, 엄숙한 정적 뒤에 숨겨야 하는 죽음이라는 금기를 가진 우리네 정서를 가진 나에게 있어 그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나는 얼굴에 해골 분장을 하고, 멕시코 친구들과 죽음의 날 '피에스따 (Fiesta, 축제 또는 파티)'를 몸소 즐기곤 했다.
해골 가면과 분장 뒤로 유쾌하게 웃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죽음이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슬픔과 애도보다, "그 사람 정말 근사하고 재미있게 살다 갔지"라며 웃어줄 수 있는 마지막을 내가 장식할 수 있을까. 죽음이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날, 역설적이게도 오늘을 더 뜨겁고 감사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역설적 다짐이 들어찼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며.
죽음은 각자의 몫이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은 집단적이라는 걸 상기할 때.
죽음을 바탕으로 한 삶의 역설적인 다짐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많이 퍼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덜 슬플 수 있도록.
아니, 서로 더 웃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