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말고 나로 살기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언제 어른이 된 걸 느끼거나 실감하는지를 묻고 싶다.

이에 대한 여러 답변들이 있다. '날씨를 낭만이 아닌 출근길로 계산할 때', '부모님이 불완전한 한 사람으로 보일 때', '가장 짜릿해야 할 금요일 밤 잠자리로 기어들어갈 때', '분노 대신 슬롯적 미소가 먼저 튀어나올 때', '음식의 평가 기준이 속편함으로 바뀔 때', '오해를 풀기보다 그럴 수 있지... 라며 넘길 때', '지겨웠던 잔소리가 생존 매뉴얼이었음을 깨달을 때', '좋은 어른 보단 그렇지 않은 어른이 많다는 걸 알아챌 때' 등.


지금 떠오르는 내 대답은 이렇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 순간"


'바카라임' 또한 어른이라는 걸 자각하게 해주는 말이자 개념이다.

또한 그것은 대개 '돈'과 연관되어 있다. 일을 하고, 바카라임을 진다는 건 먹고사는 범주에 모두 포함되며 바카라임과 의무가 쌓이는 만큼 어른이란 페르소나의 무게는 더해진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과연 어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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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 듣는 <한로로>의 노래 중엔 이런 가사가 있다.

어른이지만 어른스럽다는 말은 아직 어색해요.

<비틀비틀 짝짜꿍 中>


우리는 상당 부분, 어른이 되었는지 모른 채 이미 어른이 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곤 흠칫 놀란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른이 되는 건 참 쉽지만 어른스럽게 사는 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어른스럽게 산다는 건 또 뭘까?


여기엔 슬롯적 이데올로기가 짙게 배어 있다.

어디에도 어른은 없지만,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정서는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가득한 세상에서, 누가 참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들은 질타를 당하기 일쑤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이번 삶엔 어른임을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슬롯가 말하는 어른의 기대치에 부응할 수 없고, 합의할 수 없으며, 거부하고 싶은 무엇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른인 척 살아가고 싶다가도, 다시 철없는 행동을 하고 싶기도 하기에 지속적인 어른의 삶을 살 수 없을 바에야 그저 스스로를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개인적인 결론이다.


결론의 결론은, '어른 말고 나로 살기'.

먹고사는 고단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가족을 이루어 가장으로서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하지만 나는 계속 꿈꾸고 싶고 이루어 나가고 싶은 게 아직 많다. 철없는 생각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믿고 있으며,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결단과 실천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슬롯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때론 나를 억까하는 세상의 부조리에 투정 부릴 수 있는 유치함도 겸비하고 있다.


주위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가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울어재끼는 아기를 보며 우리는 순수하다 말한다.

내가 보기엔 상당히 이기적이고 나빠 처먹어 보이는 데에도.


어른이라 불리는 나는 그러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에도 나빠 처먹어 보이는 아기처럼 울어 젖힐 순 없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슬롯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닌 '나는 나'라는 이기심으로 뚝심 있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


어른이 아닌.

나로 살고 싶은 이유라면 이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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