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어가길 바란다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를 느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건강, 부모님과의 이별, 은퇴 후의 삶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 연명 치료는 하지 않을 것이란 말에 둘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는 은퇴와 죽음에 대해 서서히 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건지, 죽어가고 있는지가 헷갈린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 방향의 끝은 죽음이란 걸 모두가 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그걸 무시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지만, 죽음에 이른다는 숙명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영문도 모르게 태어났는데, 영문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러우면서도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서도 억울하며, 억울하면서도 우습다.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아직도 남아 있다. 무언가 유행하면 상업성은 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웰빙'은 '잘 사는 것'이란 본래의 의도를 뒤로하고, 이제는 '유기농'과 '건강'에 협착하여 기업이 원하는 10% 이상의 프리미엄 가격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본다면 '웰다잉(Well-dying)'의 개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의미가 변질되기 전에, 나는 나의 '웰다잉'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그 순간을 그려보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야지'란 다짐을 반복했다.

살아가고 있는 건지, 죽어가고 있는 건지 모를 지금 이 순간.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잘 죽어가야지'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웰다잉'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잘 죽어간다는 건 무얼까.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그래서. 잘 죽어가길 바란다. 잘 죽어가기 위해 잘 살게 될 것이고. 잘 살아가며 내 끝을 잘 준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끝이 좋아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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