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을 먹다 눈물 흘린 이유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파주에 있는 '소나무'라는 백반집에 들어선 건 오후 4시경이었다.

근처에서 라운딩을 끝내고 난 뒤, 시원한 콩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자주 가던 그 식당의 불은 꺼져 있었다. 머리는 재빨리 회전했다. 콩국수가 아니면, 무얼 먹어야 할까. 담백한 콩물이 운명의 장난에 의해 거부되자, 입은 청개구리 심보를 내보이며 매콤 달콤한 것을 떠올렸다.


소나무 식당의 문을 연 건 그 때문이다.

식당 유리 전면에 굵은 글쓰기 '제육볶음'이 쓰여있었다. 나에겐 어머님, 조금 더 젊은 사람들에겐 어느 할머니 한 분께서 식당을 홀로 지키고 계셨다. 오후 4시는 점심시간도 아니고, 저녁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므로 손님은 나 하나였다. 한국이 아니라면 (또는 외국물? 먹은 식당이라면) 브레이크 타임이라 거부당했을 시간이었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벽 모서리에 걸려 있는 때 묻은 TV는 사극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어머님의 무료함을 달랠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무료함을 달랠 휴식시간에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방인을, 어머님은 사극 속 배우보다 더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제육볶음을 부탁드리고 몇몇 뉴스를 보는 사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매콤 달콤한 냄새가 온 식당을 채웠다.

이윽고 나온 제육볶음의 빛깔은 선홍과 검붉음의 중간이었고, 얇은 고기가 양파와 함께 겹겹이 그리고 먹음직하게 겹쳐 있었다. 식탁을 채워주신 어머님은 작고 등받이 없이 동그란 안장 의자로 향해 다시 사극 드라마 삼매경에 빠졌고, 나는 제육볶음 삼매경에 빠졌다. 맛있었다. 숟가락으로 하얀 쌀밥을 듬뿍 퍼 입으로 가져갔다. 강하게 매콤 달콤했던 맛이 탄수화물과 만나 중화되며 또 다른 맛을 만들어냈다. 남자들이라면 환장할 맛,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된다. 하루 세끼, 한 달이라도 계속하여 이것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맛.


오랜만에 입 안이 가득할 만큼 밥과 반찬을 넣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다. 호르몬 탓이다. 안다. 중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간혹 눈물이 벅차오르는데, 입안 가득한 행복한 맛이 마음을 건드린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렸을 때 밥을 먹으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수많은 기억과 추억이 교차하다, 나는 마침내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래, 맞다. 그게 눈물 버튼이 된 것이다. 작년 말, 갑자기 쓰려지셔서 지금은 병원에 계신 내 어머니. 어머니의 제육볶음도 행복한 맛이었다. 양파를 좀 더 크게 썰으셨다는 점을 빼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입안을 가득 메우면 나는 간혹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비슷한 경험을 한 건, 군대에 있을 때였다. 한 선임이 나에게 건빵을 입에 많이 넣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목이 메고, 목이 메면 엄마가 보고 싶어 질 거라면서. 하얀 쌀밥과 제육볶음을 한 입에 넣고 우걱거리던 나는, 그 선임의 말을 떠올렸고, 목이 메었고.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식당 어머님 앞에서 통곡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나는 제육볶음의 맛에 더 집중하며 식사를 끝냈다.

양념까지 싹싹 긁어 밥을 없앴다. 정말 맛있게 먹었노라며,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여름인지라, 태양은 여직 중천이었다. 곧 엄마를 뵈러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차 시동을 걸었다. 엄마가 해 준 제육볶음이 먹고 싶었다며, 소나무 식당에서 느낀 감정에 대해 조잘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중년이 되어도, 엄마 앞에서 어리광은 유효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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