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이 더 잘 되면 좋겠다.
무해력(無害力)
<트렌드 코리아>에서 제시한 시대의 키워드 중, '무해력(無害力)'이란 것이 있다.
'해롭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남을 해치지 않을 것 같은 순수한 존재가 가지는 힘'을 말한다. 완벽하고 압도적인 존재가 주는 위압감 대신, 덜 완벽하지만 부드럽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에 사람들은 마음 문을 연다. 무해한 존재는 타인에게 위협을 가하지도, 우리를 평가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현대인에게 무해한 위로를 건넨다. 온라인 게임에서 짓밟고 짓밟히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몸과 영혼을 이끌고 오면, 짧은 동영상 안에서 레트리버나 귀여운 아기 영상에 매진하는 나 자신이 그 무해력의 힘을 증명 한다.
고로, 현대인들에게 있어 '무해력'은 일종의 '위로'다.
물 들어오지도 않은데
노 젓는 친구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다.
기회를 만나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극대화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기회도 와야 잡는 것 아니냐."라고 순수한 얼굴로 들이대는 친구가 있다. 리센느라는 걸그룹의 막내 이야기다.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자본력과 압도적인 마케팅을 등에 없고 출발하는 아이돌은 소위 말해 금수저와 같이 기회를 안고 출발한다. 중소돌의 반란이라 불리는 '리센느'의 발자취는 말 그대로 흙수저였다. 그들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고, 여느 걸그룹과 같이 쉽게 사라질 줄 알았다. 이들은 조용히, 그러나 지독하리만치 성실하게 자신들의 노를 저어왔다. '기회'를 운운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물이라는 기회가 오지 않았는 데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노를 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들은 데뷔 후 바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무대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기에, 그 소중함을 알기에 어디든 달려갔다. 초등학교 운동장, 흙바닥에서 안무와 노래를 한 영상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얼마나 노를 저었는지 말해준다. 무대에서 내려가라는 스태프의 안내에, 준비한 게 있으니 딱 1분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과 그리하여 1분보다 짧게 주어진 50초에 온 열정을 불사르던 리센느의 모습은 나는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추를 종용하기도 했다.
착한 사람들의 반란:
그들의 향기는 '사람 냄새'
나는 '무해력'을 좋아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건 나에게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때론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악독하게 먹어야 하는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도 한다.
리센느에게 끌린 건, 어쩌면 이러한 무해력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하다.
나는 BTS도 좋아한다.
아미까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서사를 좋아하고 지구 스타가 되었음에도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인간성이 참 마음에 든다. 그 또한 무해력의 한 영역이란 걸, 리센느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은 참으로 자극적이다.
뉴스도, 음식도, 광고도, 사람들의 마음도. 복잡하고, 자극적이고, 서로가 안쓰러운 이 시대에 무해력의 위로는 어쩌면 필수가 아닐까 싶다.
걸그룹의 태생은, 화려하고 예쁘고 섹시하고 완벽함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리센느는 순수한 사람냄새가 난다. 그들의 이름과 콘셉트가 '향기'라고 하는데, 이름과 콘셉트를 참으로 잘 잡은 듯하다.
고로, 리센느의 향기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사람 냄새'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향기는, 착한 사람들의 반란이 되어 온 세상을 물들일지도 모르겠다.
착한 사람들이 잘 되면 좋겠다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는 권선징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대, 각박해져 가는 세상, 순수함은 잃고 자극적인 것만 추구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못된 사람들은 자신의 못됨을 알지 못한다.
못됨으로 얻은 것들이 오히려 왕관과 자본이 되어, 나라를 팔았음에도 나라를 지킨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 산다. 그걸 자랑이라고 떠벌리던 한 배우는 광복절을 앞두고 뭇매를 맞고 있고, 시대가 변하여 학교폭력 전례가 있는 사람들은 대중의 필터와 레이더에 걸려 필터링이 되고 있다.
권선징악은 없지만, 그걸 바라는 사람은 많다.
순수하고 사람 냄새나는 리센느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지쳐 있다. 마음의 때가 한가득이다. 순수하게 응원할 존재가 필요하다. 어느 잘난 연예인들처럼 그들을 추앙하기보단, 친구와 동생 그리고 가족과 같이 그들의 서사 끝에 해피엔딩이 있기를 바라는 그런 존재로 리센느가 기억되길 바란다.
리센느의 역설.
착한 사람들이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현실을 방증하겠지만. 착하면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덜 잊히고, 어떻게든 끝까지 노 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물이 들어차길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