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보행은 '걸음'과 '움직임'이 합쳐진 글자다.
하여, '보행자'라 함은 걸어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크게는 도로와 인도로 나뉜 길은 차와 보행자라는 각자의 방향과 질서를 자아낸다.
우리나라는 2009년 시범 도입을 통해 2010년 7월 최종 우측통행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큰 변화였고 그전까지는 차와 사람이 뒤엉켰으나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버텨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이가 지긋하신 몇몇 어르신의 방향은 여전히 좌측을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출장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나는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을 오간다.
지금은 호주에 있지만, 지난주 튀르키예에선 우리와 같이 우측통행을 했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보행할 때 이질감을 느꼈고, 그 이질감은 사람들과의 갈등을 자아냈다. 공항에서 택시에 오르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아, 여긴 운전석이 반대지. 그러하므로 여긴 좌측통행이지...
주말, 잠시 방문한 관광지는 무질서 속 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호주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 난무(?)했고, 나는 결국 '눈치 통행'을 했어야 했다. 우측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해서는 좌측으로, 좌측에서 걸어오는 무리에게는 우측으로 비켜섰다.
그럼에도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때로 갈등한다.
부딪치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고.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한다. 한국에서 조차, 마주한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피해 주려다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한두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마음은 보행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법과 규제에도, 마음은 우측 또는 좌측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하니, 마음의 보행 방향은 제각각이다. 한 드라마에서, 어느 통역가에게 세상에는 몇 가지의 언어가 있냐고 묻자 그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질문한 사람은 세상의 사람 수만큼 언어가 있다과 했다. 마음도 그 보행의 방향이 다르지 않다. 좌측과 우측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다양한 방향이 있다. 내 마음조차 좌, 우측을 정해놓고 다니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때로 나는 일어나는 타인과의 갈등을, 보행 충돌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보행 충돌은 서로의 다름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다르지 않은 마음이지만 의도치 않게도 발생하니까. 아이러니한 건, 같은 방향으로 피해 주다 서로의 길을 막는 것처럼, 배려한 마음이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중요한 건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어떤 보행도, 저마다의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갈등이 무서워 가던 길을 가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묵묵히 앞으로,
내 목적지로 나아가는 보행은 저마다의,
삶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