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어렸을 때 작은 미스터리가 있었다면, 그건 어른에 관한 것이었다.
어른들은 나와 달랐다. 가장 크게 다른 건, 내가 좋아하는 단 것들을 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나와 먹는 걸로 심히 다투곤 했다. 어쩌다 생긴 자두맛 사탕 봉지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사료 앞에 놓인 강아지들처럼 으르렁 거렸다. 너 하나, 나 하나. 이렇게 나누다 보면 짝수가 아닌 이상, 사탕 하나가 남았다. 하나 남은 사탕을 어떻게 처리할지, 양보 없는 눈치 싸움을 하다가 결국 남는 건 엄마를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걸 늘 드시지 않았다. 너희 먹으라거나, 누나 또는 나에게 공평하게 한 번씩 번갈아 주시곤 했다. 그리하여 내 결론은 어른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알았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몸이 당에 바로 반응한다. '당스파이크'가 뭔지 이론이 아니라 실체적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젊었을 땐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음식들, 예를 들어 자장면이나 초콜릿이나 사탕 몇 개 등... 먹고 나면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느낀다. 식후 극심한 졸음이 오거나 때로는 두통과 어지러움까지 올라온다.
그런 경험을 맞이해서일까.
이젠 아주 달콤한 것을 먹는 것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가끔은 당이 미친 듯이 당기긴 하지만, 그걸 원하는 대로 집어들 용기가 없다. 어렸을 적 미스터리가 풀린다. 어른들은 단 맛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감당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러하므로 어린 시절과의 선을 그을 수 있었다는 걸.
달콤함을 줄이며 그렇게 어른이 되는 여정이 조금은 씁쓸하다.
가뜩이나 삶도 쓴 맛인데, 입과 몸에 단 맛이 허락되지 않는다니 가혹한 운명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 게 어른의 삶이란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단 맛이라고 해봐야 술이 달아야 하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들고 오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용기 내어 거절할 수 있다.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척할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어머니도 그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출장 다녀오면서 사온 초콜릿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을 간혹 보았기에.
어른이 되는 건 참 쉽다.
그러나 어른답게 살아가는 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