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정리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오랜만에 마트에 발을 들였다.

요즘은 도통 대형 마트에 방문할 일이 별로 없다. 대개는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이유도 있다. 장난감을 찾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이미 수험생인 아이들에게 마트는 더 이상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할 생활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마트에 가면 소비자들의 연령대가 훌쩍 높아진 것을 분명 느낀다.


몇몇 많지 않은 물품을 계산하고 나오다가, 현금 인출기 앞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오래지만 친숙하고, 친숙하지만 지금은 생경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통장을 쌓아 놓고 통장 정리를 하고 계셨다. 통장 정리라... 이걸 해본 마지막이 언제일까.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도 대학시절이었던 것도 같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지점이었던 것도 같다. 종이 통장을 마지막으로 만져본 것도 언제인지 영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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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정리 기능이 아직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야 할머니께서 통장을 정리하실 수 있을 테니. 할머니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통장 정리를 하고 있을 수 있다. 나에게 필요 없다고 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 없다는 건 지식의 저주이자, 세상을 좁게 보는 오만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시간에 산다.

시간은 시대에 종속되지만, 그 종속의 연대감은 절대적이지 않다. AI가 판치는 세상에도 통장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 있고, 그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할머니에겐 통장 정리 또한 어느 최신의 기술일 수도 있고, 따라가기 힘든 무엇일 수 있다.


간혹, 키오스크 앞에서 일사천리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잘 안다고 하지만, 익숙하다고 자만하지만 허점은 늘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러할 때면 무언가에 크게 뒤처지는 느낌이 들고, 그러할 때면 나는 불안과 무기력함을 간혹 느끼기도 한다.


통장 정리를 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누군가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볼 수도 있고, 어쩌면 분명 그러한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아이들보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기술의 문명 앞에서, 아이들의 핀잔이 지금은 장난이지만... 이것이 장난이 아닐 날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할머니의 통장 정리가 잘 되었기를.

오래된 통장 몇 개가 줄어들었길. 집으로 가시는 길에 큰 안도감을 가지고 가셨길. 만약 여유가 있다면, 자식과 손주보다는 할머니 자신에게 그 돈을 좀 더 쓰시길 바라며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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