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버스 기사님이 갑자기 차를 정차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화장실을 급하게 가신 듯했다. 목적지까지 한 정거장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걸어서 가면 5분 정도의 거리였고, 나는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내려 걸어갈지 아니면 기다릴지를 점심 메뉴 고르는 것 이상으로 고뇌했다.
결론은 내려 걷는 것이었다.
운동이 부족하다는 것이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하차 카드를 찍고 열려 있는 앞 문으로 내려가는 찰나, 기사님이 오고 있었다. '내가 그렇지 뭐...', 삶은 항상 이런 식이라는 투덜거림으로 다음 정거장으로 나아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삶의 부조리는 이처럼,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음을 나는 상기했고, 이 작은 분풀이를 어디에 해야 할까를 또한 고뇌했다.
신호등을 지나, 목적지 근처에 있는 어느 공원 초입에 다다랐을 때였다.
무심코 걷다, 오른발이 땅에 디뎌지려는 찰나... 나는 바삐 움직이는 개미를 보았다. 하마터면 개미를 밟을 뻔했고, 나는 급히 오른 발의 도착 지점을 수정했다. 다행히 나는 개미를 밟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행'이라는 말이 나에게 어울리는 것인지, 아니면 개미에게 어울리는 것인지를 잠시 생각했지만 어찌 되었건 개미가 무사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개미를 밟았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쓰러지는 나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무는 쓰러지지 않은 것이란 양자역학의 이론에 따르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 밟혀 죽은 개미는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밟았을지 모르는 개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개미들에게 있어, 나의 발걸음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일까.
그들은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과자 부스러기 하나를 힘겹게 옮겨, 공동체로 가져가 그것을 저장하고 나누려 했을 텐데. 갑자기 어느 큰 발바닥이 내려와 자신을 짓밟았다고 하면, 그건 운명일까, 숙명일까, 팔자일가... 형벌일까. 그러나 그 발바닥 또한 어떤 살의를 가진 게 아니라, 바쁘게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었다면. 의도치 않는 이 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체계를 설계한 존재는 누구이며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의도는.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는. 과연.
개미를 밟지 않았다고 해서, 개미의 운명을 바꾸었다거나 나의 숙명을 뒤집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밟지 않은 개미가 다른 누군가에게 밟히지 않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받아들여야 하는, 삶에 있어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를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나저나.
다음엔 버스에서 내리지 말고, 기사님이 곧 돌아오기를 진득하게 기다려야겠다. 한 정거장이긴 했지만, 걷기엔 너무 더운 날씨였고 괜스레 걷다가 개미를 밟을 (부조리의) 확률도 줄일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