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선명한 날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유독 그러한 날이 있다.

사물과 주위 모든 것의 경계가 더 선명한. 날씨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비 온 뒤 맑은 날의 주변은 다른 어느 날보다 조금은 더 명징하고, 그러한 명징함이 서로 간의 경계를 더 선명하게 한다.


선명함은 개운함을 선사한다.

뿌옇던 것들이, 또는 경계가 모호하거나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먹구름이 걷히듯 선명해지면 가슴 답답했던 것들이 해소되는 것만 같다. 삶과 인생은 늘 모호하지 않은가. 맞는 것이 맞는 게 아니고, 틀린 것이 틀린 게 아니다. 정답은 없고 오답만 가득한 삶에서, 어느 하루와 또는 어느 순간의 선명함은 모호한 삶의 부조리를 조금은 덜어준다.


군대에선 선임들이 갓 들어온 신병들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한다.

뒤이어, 그게 너의 미래이자 제대 날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한 마디로 암담하고,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 복무 기간이 많이 짧아진 요즘에도 유효한 말일까 싶지만, 어찌 되었건 보이지 않는 앞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며 이와 반대되는 선명함은 유쾌하지 않음의 반대 개념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날마다 선명하면 삶은 어떠할까.

선명함은 때론 날카로움이 된다. 삶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 늘 그러할 수 없다. 물은 칼로 잘리거나 나뉘지 않는다. 선명함은 무언가를 몇 가지고 쪼개는 만능 칼이 아니다. 쪼개어질 수 있는 것과, 잘리지 아니하는 것들이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한 가운데 선명함을 추구하는 우리네 바람은, 그러하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며 모호한 것들이 많기에 삶의 희로애락이 작동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때로 모호함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장난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농담은, 거짓말처럼 그렇게 모호함으로부터 솟아나며 삶의 농담에 당해본 자는 선명함의 소중함을 안다.


유독 더 선명한 날이 반가운 이유다.

선명함과 명징함 앞에, 삶의 농담은 옅어지고. 장난꾸러기와 같은 인생의 몽니를 명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날씨는 비 온 뒤 맑아진 어느 하루와 같다. 다만, 더 선명한 날은 모호한 날들의 연속에서 오는 상대적인 가치일 수 있다.


마음에도 날씨가 있듯, 우리네 관점에도 선명함과 모호함이 늘 오간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마음의 날씨는 어떠한 지, 관점의 선명도가 얼마만큼인지. 혹, 마음의 시력이 떨어진 건 아닌지.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이미 나빠진 시력이라면 어떠한 관점의 안경이라도 필요한 건 아닌지.


어쩐지, 오늘은 생각이 더 선명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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