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무례함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 안.

환승역에 이르자 수많은 생물학적 질량이 열차 안으로 들어찼다. 공기가 텁텁해질 정도였고, 사람들의 혼잡함이 그 원인을 설명하고도 남았다.


나는 열차 정중앙의 좌석 끝쯤에 서 있었다.

내 바로 앞의 오른쪽. 한 젊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으니 자연스레 그 사람의 올려진 다리는 앞으로 향했고, 한 명 정도는 더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혼잡한 퇴근길 전철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내 자세를 고쳐 잡길 바랐다. 그러나 몇 정거장 후, 또 다른 환승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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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곳곳에서 나는 타인의 무례함들을 마주한다.

다행인지 아닌지, 나의 오지랖은 그리 넓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 무례함들을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옳은지 아닌지 누가 아는가. 그들의 무례함을 옳고 그르다고 말할 기준이 무엇인지를 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타인이다.

무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무례하지 않음이 누군가에겐 무례함이 될 수도 있다. 한 번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의 한 할머니가 앞을 지나가다 내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서 있을 따름이었고, 할머니는 주위를 살피지 않은 채 당신이 타야 할 버스가 오니 맹목적으로 그것에 다가가다 일어난 일이었다. 찰나의 순간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원망하듯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영 마뜩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던가. 살짝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할머니에게 나는 무례한 타인이었을 것이다.


손해. 손실. 피해.

나는 이 세 가지를 늘 상기한다. 나이가 드니, 이제 어느 정도는 손해 보고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손해보지 않으려 아등바등했던 날들을 후회할 정도다. 손해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나니, 편해지는 건 내 마음이다. 그렇다고 손실과 피해를 감내하는 건 아니다. 평가할 수 없는 타인의 무례함이, 나에게 또는 타인에게라도 손실과 피해로 이어진다면 그건 가만히 있어선 안될 일이다. 다만, 감정을 다스리며 이성적으로 대할 지혜와 차분함은 겸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일도 나는 타인의 무례함들을 마주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타인이 될 것이다.


타인의 무례함.

무례하지 않은 타인 되기.


어쩌면 삶의 고단함은 이러한 것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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