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운동을 마치고 접어든 동네 초입의 기온은 약 25도였으며, 두렵지 않은 어둠과 잔인하지 않은 적막함이 서로 엉켜 기이하고도 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동네라고 규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삶의 범주와 반경, 주택과 상가의 어슴푸레한 조합은 사람들의 호흡으로 채워지며 물리적인 선을 초월하는 어느 경계를 만들어 낸다.


동네는 '품'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긴 출장 또는 먼 여행을 다녀왔을 때, 동네에 접어들면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잠시 길을 잃어 방황하던 어린 사슴이 제 어미의 품에 안기는 감정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이 감정이 실존한다고 믿는다. 재건축이 확정되어 사람들이 퇴거한 길 건너 한 동네에선, 그러한 감정은 일지 않았다. 꼭 우리 동네가 아니더라도, '동네' 자체가 주는 포근하고 아련한 무엇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이 빠진 건물과 경계는 동네라는 개념을 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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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지금의 동네보다 어린 지난날의 그것을 더 동경한다.

도시 계획으로 더 선명해진 동네는 지금의 모습이지만, 이건 어쩐지 '동네'라기 보단 '구획'이란 느낌이 더 크다. 무엇보다 '골목의 냄새'가 사라진 게 안타깝다. 가난했지만, 작은 동네는 오밀조밀한 골목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골목을 걸으면 어느 집이 무슨 음식을 먹는지 알 것만 같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냄새가 나곤 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그 골목이 좋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가족의 작은 웅성임과 식기를 치우며 들리는 달그락 소리들이 좋았다.


지난주 어느 요일, 부동산에 능통한 지인을 만났다.

그는 성향상으로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건물주'라는 명함 자체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눈엔 모든 게 '돈'이었다.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 어릴 땐 그러한 기준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이제 나는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난 오밀조밀했던 가난한 골목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논의는 아니다. 다만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을 뿐이며, 추억은 추억대로 놓고 나도 어서 건물주의 반열에 올라야지... 하는 낯선 다짐만이 온몸을 감쌀 뿐이었다.


가난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나는 동네가 선사하는 골목과, 골목이 만들어 내는 동네의 경계에 대한 향수(鄕愁)를 잃고 싶지 않다. 재현할 수 없더라도, 가지지 못하더라도, 돌아갈 수 없더라도 나는 그것을 안고 살아가고 싶다. 삶의 모든 기준이 돈과 자산이 되어가는 시점에, 지난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물주 지인은 나의 이러한 감정을 대 놓고 비웃었고, 그것은 나에게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선고로 느껴졌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한 향수를 가지고 있어도, 어른이 될 수 있고,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동네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다.

골목의 추억을 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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