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
"오늘은 날씨도 더운데, 콩국수 어때?"
아내는 흔쾌히 내 의견에 합의를 했다.
메뉴는 정했다. 이젠 어디에서 먹을지 차례다.
"콩국물을 사다 집에서 먹을까, 아니면 요 앞 칼국수 집에 가서 먹을까?"
콩국물을 사다 집에서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두부면이나 곤약면 등, 몇몇 처리(?) 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다 치고, 애들은 콩국수 먹을까?"
아이들의 의견은 갈렸다.
한 명은 햄버거, 또 한 명은 치킨. 가까스로 치킨 하나로 메뉴를 통일시켰다.
콩국물을 사러 나가는 길에, 동네에 있는 치킨 가게도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는 이미 바리바리 한 짐이 들려 있었다. 면을 삶고, 씻고, 담고. 아이들은 이미 치킨 봉지를 풀어, 맛있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먹고 있었다. 콩국물의 맛은 진했다. 건강을 생각해, 이전엔 듬뿍 넣었을 설탕을 뺐다. 맛이 슴슴했지만, 당의 폭격 이후에 남는 꺼림칙함을 제거했다는 안도감으로 후루룩 맛있게 콩국수를 목으로 넘겼다.
한바탕 먹는 것의 행위가 지나간 뒤.
가족은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봤다. 아직 무언가 다 차지 않은 눈치들이었다. 건강한 맛의 콩국수는 아무래도 무언가 부족했고, 빠르게 사라져 버린 치킨은 아이들에겐 식사가 아닌 간식이었다. 나는 냉장고에 있던 리코타 치즈와 아몬드, 크랜베리를 꺼내 들었고 이를 본 아내는 자연스럽게 베이글 한 개 반을 레인지에 데우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 녀석은 이미 불닭 볶음면 한 봉지씩을 들어 물 끓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참, 먹느라고 바빠. 우리."
정말이었다.
이러한 소동은, 하루에 기본적으로 세 번, 덜 먹는다 해도 최소한 두 번은 일어날 일이다. 먹는 것에 들이는, 또한 먹기 위해 그 이전과 후에 쏟는 정성과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나, 먹다가 인생을 다 보낼 것 같은 허무함이 동반되는 건 그저 기분 탓일지.
먹느라고 바쁜 하루.
먹고사느라고 바쁜 일생.
결국, 그 안에 모든 희로애락이 있음을 다시 한번 더 깨닫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