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아침 출근길.
통근 버스 안. 집에서 여의도까지는 30여분이 걸리는데, 깊은 잠을 자기엔 충분하지가 않고 그렇다고 눈을 감지 않으면 할 게 별로 없다. 휴대폰으로 글을 읽자니 눈이 어지럽고, 동영상을 보자니 고요한 아침의 기운을 방해하는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땐 머리로 글감을 생각하거나, 제목을 짓거나... 사색을 한다. 간 밤의 꿈을 곱씹을 때도 있고, 하루 일의 시작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다 꼭 차창 밖을 주시하는 때가 있다.
통근 버스가 홍대를 가로질러 갈 때다. 홍대를 전 후로 한 거리는 고요하고 지루하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고, 어느 정거장을 지날 때에야 각자의 출근과 통학을 위해 줄 선 사람들을 보는 정도다. 홍대에서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보는 이유는 젊음을 주시하기 위해서다.
지난밤을 아직 끝내지 않은 젊음들이 홍대 거리엔 가득하다.
술에 취해 비틀 거리기도 하고, 이성과 짝을 이루어 애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편의점 앞에서 숙취 음료를 들고 뻗어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에게 아침 해는 먹고살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하는 알람이지만, 그들에겐 아쉬운 밤을 끝내야 하는 여운의 끝자락과 같은 아련함이다.
내 젊음을 돌아본다.
먹고사니즘의 범주에 들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어떠한 바카라임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없었을 때. 나는 그리 찬란한 젊음을 보냈다고 할 수가 없다. 저지르고, 무언가를 과감하게 해 본 기억보다는 하지 않아 후회한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 젊음의 특권을 누린 건 사실이긴 하다. 그 특권은 바로 '낭비'다. 시간 낭비, 마음 낭비, 생각 낭비. '낭비'란 뜻은 재물이나 시간 따위를 아껴 쓰지 않고 헛되이 헤프게 쓰는 걸 말한다. 어릴 적 내게 '재물'은 있지 않은 무엇이었으므로, 내가 낭비한 건 시간이며, 그 안에는 마음과 생각이 가득 차 있다.
무엇을 위해 나는 그토록 시간을 죽이고, 낭비하고, 허비했을까.
남는 게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바카라한 시간이 적지 않다. 홍대 아침 거리를, 지난밤의 숙취로 헤매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력을 다해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 것일까. 숙취를 안고 다음 날을 허비해 본 적 없는 나로선, 그 모습이 좀 부럽기까지 하다. 왠지, 그들의 젊음은 낭비가 아닌 만끽으로 여겨진다. 생각하보니 더 억울하다. 술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렇다면 난 무엇으로 젊음의 시간을 낭비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닌 지난 젊은 날의 시간이, 안타깝고도 안쓰럽게 다가온다.
젊음은 낭비하는 맛이 있다.
돌아보면 아깝고 안타깝지만, 어차피 먹고사니즘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젊음과는 먼 삶을 살아야 하고, 낭비할 수 있는 범주가 급격히 줄어들므로... 어쩌면 낭비할 수 있을 때 낭비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삶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정의에 대해, 소비적이고 생산적이란 단어는 잠시 접어 두고 싶다. 누군가는 낭비와 후회에서 영감을 얻고, 각성을 하기도 하니까. 낭비로 인해 자바카라하던 나 또한, 정신 차리고 우리 가족을 잘 지켜내고 있으니까.
이른 아침, 출근길에 보는 비틀 거리는 그 모습이 젊음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건 분명, 젊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솔직히, 참으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