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삶은, 배고픔에 허겁지겁하고, 배부름에 더부룩한 날들의 반복이다.
분명 배고픈 나날들이 있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더 필요했던 그런 날 말이다. 밥공기에 밥풀이 몇 개라도 묻어 있을라치면, 그 쌀 한 톨을 짓기 위해 농부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수고 하는지, 지구 반대편에선 불쌍한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 간다는 어른들의 호통이 날아오곤 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밥공기에 밥풀을 남기지 않으려, 선키스트 주스 병에 든 보리차 물을 부어 입과 그릇을 동시에 헹구곤 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남기지 않는 게 미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고 넘친다.
없는 게 없고, 남겨지고 버려지는 음식이 허다하다. 배부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배고플 때, 혈당을 급격하게 올려 줄 자극적인 음식도 많다. 소위 말해 먹방이라는 방송도 유행하고 있다. 배고팠던 옛날이었다면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라는 호통과 함께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은 찌고, 체중은 늘어나고, 건강은 적신호가 된다.
그리하여 지금은 남기지 않는 게 아니라, 남기는 게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음식을 남기는 게, 그게 생각만큼은 쉽지 않다.
배는 부르지만 입은 음식을 아직 원하고, 자극적인 음식이라면 그저 몸이 원한다. 더 이상 먹지 말아야지...라는 신호는 무용지물. 입에 넣고 보고, 이번이 마지막이란 다짐을 하지만 '작심일초'가 되어 어느샌가 숟가락과 젓가락은 입으로 향하고 만다.
며칠 전엔, 자장면이 너무 당겨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그러나 속은 더부룩했다. 탕수육을 곁들이지 말던가, 자장 소스를 들이켜지 말아야 했다. 말은 쉽다. 그러하지 못할 거란 걸, 나는 잘 안다.
이젠, 자장면 하나를 즐겁게, 거뜬하게 다 먹지 못하는 나이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근래 들어 먹고 싶은 걸 마구 먹었더니 체중이 늘었다.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나에게 허하는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배려는 그만 중단을 해야 할 것 같다. 맞지 않는 옷이 하나 둘 늘어 나는 게, 영 기분이 찜찜하다.
하여, 며칠 전부터 나는 소식(小食)을 하고 있다.
적게 먹기와 당분 줄이기를 함께 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수시로 들린다. 그런데, 그게 기분이 참 좋다. 의학자들은 이때 젊음의 호르몬이 나온다고까지 말한다. 젊어지는 것까진 모르겠으나, 비움의 미학이랄까... 결핍의 상쾌함이 싫지가 않다.
배고픔은 생존을 위한 절절한 신호다.
풍족하지 못한 시대의 배고픔은 공포이자 필수이지만, 지금의 그것은 즐거움이자 선택이다. 이러다 또 어떤 음식에 꽂혀, 그걸 폭식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자장면 한 그릇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나. 많이 먹고 나면 후회할 나. 맞지 않는 옷이 없다며 툴툴댈 나를.
그저, 먹지 아니함의 즐거움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덜 시키고, 덜 먹고. 과하지 않게. 쌀 한 톨을 위해 수고하는 농부의 마음과 지구 반대 편에서 배고픔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