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번잡한 홍대 어느 거리의 한산한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나온 거리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분주했기 때문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땐, 그러한 소란함과 분주함을 즐겼을 테지만 지금은 영 그러하질 못한다.
카페는 총 9층으로 된 아주 큰 규모의 것이었다.
주문받는 곳이 8층인데, 그곳에서 주문을 하면 테마로 꾸며진 각 층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 층 한 층을 살펴보다, 우리는 6층 LP 음악 감상실을 찾았다. 아날로그라는 향수가, 어쩌면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의 이 분주함과 소란함에 대한 가바카라을, 조금은 변호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섞인 선택이었다.
한 젊음이 구석에 일을 하는지 글을 쓰는지 노트북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나와 아내는 저 멀리 자리를 잡았다. 아날로그의 소리가 온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갑자기 위로가 되었다. 이 휘황찬란한 밤에,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있어도 된다고 아날로그 음악은 우리의 시공간을 허락하고 있었다.
LP를 듣다 보면, 간혹 작은 잡음들이 들린다.
디지털은 이러한 잡음을 없앨 기술을 가지고 있다. 진보와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다. 그러니까 '잡음'은 LP의 시절에 무언가 거슬리는 것이었고, 그것을 줄이거나 없애는 게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영 반대다. 사람들은 그 '잡음'을 그리워한다.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디지털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여 없애고 싶지 않은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렇다, '감성'이 사라진 자리엔 소비의 강압이 가득한 '갬성'이 들어차고 있다.
예전의 '감성'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의 '갬성'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좋은 소재가 된다면, 그토록 서민의 음식이었던 냉삼겹살도 '갬성'이란 이름 하에 일반 삼겹살의 가격을 훌쩍 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감성'이 '갬성'보다 좋다.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의 감정. 다른 이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내려놓고, 오롯이 그것에 집중하고 만끽하기 위해. 그리하여 나를 좀 더 잘 느끼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참 쉽지 않은 분주한 시대.
음악으로 감정을 불러일으켜, 감성을 즐기는 하루가 하루라도 늘어나길.